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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는 다른 세상에서"…미투 이후를 생각하는 부모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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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교과서 속 삽화. 운동을 하는 건 모두 남학생들이고 여학생들은 앉아서 남학생들을 응원하고 있다. [사진 초등학교 교과서]

초등학교 교과서 속 삽화. 운동을 하는 건 모두 남학생들이고 여학생들은 앉아서 남학생들을 응원하고 있다. [사진 초등학교 교과서]

'미투'(#MeToo) 운동이 시작된 이후 부모 세대들이 다음 세대 '바뀐 세상'에서 살아갈 아이들의 교육에 시선을 돌리고 있다. 어릴 때부터 아이에게 성평등 의식을 심어주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지난 4일 경남 창원에 사는 조모(33)씨는 5살 된 아들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한국여성대회에 참가했다. "저기 저 분홍색, 엄청 멋있다 그치?" 조씨가 한 분홍색 현수막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는 "아들이 최근 '분홍색은 여자애들이 쓰는 색''파란색은 멋진 남자 색' 등 색에 대한 성 고정관념이 생겨 바꿔주려고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해준다'고 말했다.

아이 셋을 키우는 이미경(31)씨 부부의 주말은 '아빠가 요리하는 날'이다. 이씨는 "주말에는 볶음밥, 계란찜 등 간단한 거라도 남편이 꼭 만든다"며 "청소도 '엄마, 아빠가 같이 하는 것'이라고 아이들에게 강조한다"고 들려줬다. 아들 한명을 둔 권대연(35)씨는 "내 아들이 미투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고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며 "성의식 교육 차원에서 아이에게 미투의 의미를 가르쳐주려 한다"고 말했다.

학교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성남 판교 산운초등학교는 올해 학생들의 출석번호 배치 순서를 '1번부터 남학생, 그 다음은 여학생'에서 '짝수해는 여학생 1번, 홀수해는 남학생 1번'으로 바꿨다. 이 학교 교사 신모(28)씨는 "막상 바꾸니 아이들은 '왜 바꿔요?'라는 질문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어른들이 바꿔주면 아이들은 편견 없이 자랄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바뀌고 있는 대중의 인식과는 별개로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 내의 성차별은 여전하다. 특히 초등학교 3년 도덕 교과서에는 전체 134페이지 중 '직업을 가진 여성'의 그림이 책 전체를 통틀어 단 두 명 나온다. 지난해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올해부터 쓰일 '2015 개정 초등교과서' 16권을 분석한 조사에서도 여성과 남성의 직업, 활동, 역할 등에 대한 고정관념이 교과서 전반에서 발견됐다. 예를 들어 과학자·기자·기관사 등의 직업은 모두 남성 캐릭터로 그려졌고, 승무원·기상캐스터·급식배식원 등은 여성이었다.

김성열 경남대 교육학과 교수는 "사소한 것이라도 '엄마는 원래 집에서 밥하는 사람''아빠는 밖에서 일하는 사람' 등 특정 내용이나 주장을 지속적으로 학습하게 되면 그게 성 역할 관념으로 고착화된다"며 "일상에서 아이들이 어떤 장면에 많이 노출되고 경험하느냐가 사고 방식 형성에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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