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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칼럼]한국 기업에는 있고 핀란드 기업에는 없는 ‘갑질 문화’

중앙일보

입력

유성만

유성만

유성만 쓰리알시스템즈 대표

국내 대기업을 나온 뒤 핀란드 기업에서만 10년 넘게 일을 했다. 현재 중소기업을 경영하면서도 업무적으로 핀란드 회사와 계속 접촉을 하고 있다.

핀란드는 여러모로 한국과 닮은 구석이 많다. 핀란드는 지리적으로 열강들 사이에 있어 러시아ㆍ스웨덴 등 주변국의 침략을 받았다. 중국ㆍ일본에 시달려온 한국과 판박이다. 한국에 ‘깡다구’ 정신이 있다면 핀란드에는 비슷한 개념의 ‘시수’(sisu) 정신이 있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강한 인내심’ 정도로 해석된다. 지하자원이 부족해 일찌감치 인적자원 개발에 눈을 떠 투자해온 덕분에 경제부국이 됐다. 공교롭게도 핀란드어는 한국어와 같은 우랄 알타이어 계통의 언어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인들이 핀란드 사람들을 사석에서 만나면 죽이 잘 맞는 편이다. 그러나 회사에서 일하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한국 직장인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 중 하나가 ‘깨졌다’라는 말이다. 고성과 욕설이 난무하는 직장 상사의 이유 없는 ‘까임’에 속이 상한다. 0%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핀란드 기업에서 일하며 나는 상사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직원을 혼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상사는 공동의 목표를 함께 달성하기 위해 팀원보다 더 많은 책임과 권한을 가진 리더일 뿐이다.

국내에서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하도급 업체들에 수시로 갑질을 하는 원청업체가 적지않은 편이다. 임원급 인사가 하청업체에 직접 금품ㆍ향응을 요구하는 등 도가 넘는 갑질을 해 법의 심판을 받는 경우도 더러 있다. 핀란드에서 직원 3만명을 거느린 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가 한국에 왔을 때 얘기다. 그는 ‘을’,‘병’도 아닌 ‘정’ 정도 되는 나와 종일 자동차로 함께 이동하고 식당에서 나란히 앉아 식사하며 여러 의견을 나눴다.

한번은 핀란드 동료들에게 “핀란드에는 정말 남녀 차별이 없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들은 “그 말은 거짓”이라면서 “여성의 지위가 남성을 앞선다”라는 농담 섞인 진심을 얘기하기도 했다.

핀란드는 유럽 스타트업의 요람으로 꼽힐 정도로 창업 생태계가 잘 갖춰져 있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상생으로 기업가 정신도 충만하다. 갑질 문화가 없는 유연한 조직문화와 수평적 의사소통구조가 핀란드를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나라’(세계경제포럼 세계경쟁력보고서)로 만들었다고 나는 믿는다.

기업가로 두 나라를 비교해보면 상대방을 배려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그들의 성숙한 기업 문화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본다.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갑질 기업문화가 남아있는 한 한국에서 수평적 관계나 상호협력관계는 꿈조차 못 꾼다. 이는 중소기업ㆍ평직원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데 큰 걸림돌이 되고 결국 한국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게 된다.

‘즐거운 사람은 풀이 꽃으로 보이고, 주눅이 든 사람은 꽃도 풀로 보인다’라는 핀란드 속담이 있다. 기업 안에서 주눅이 든 사람을 즐거운 사람으로 바꾸는 시작은 ‘갑질’을 없애는 것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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