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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덕환의화학이야기

수돗물은 그냥 얻어지지 않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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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물이 있어야만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 물은 생물에게 직접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생리현상이 정교하게 진행되기 위해 필요한 물리적.화학적 환경을 마련해준다.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시켜 주고, 다양한 화학물질을 잘 녹여주는 것이 핵심이다. 생물의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해 주는 탄수화물, 생리작용을 조절해 주는 단백질,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DNA가 모두 물에 잘 녹는다. 독특하게 구부러진 분자 구조 때문에 나타나는 물 분자의 유별난 극성(極性) 덕분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물의 그런 특성에도 양면성이 있다. 무엇이나 잘 녹여주는 것이 생물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만, 깨끗한 물을 원하는 경우에는 정반대가 된다. 물이 오염되기 쉽고, 일단 오염된 물은 다시 깨끗하게 만들기가 어렵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지구에는 무려 140경(京)t의 물이 있다. 정말 엄청난 양이지만, 소금이 녹아있는 바닷물을 빼고 나면 민물은 0.003%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대부분의 민물은 빙하나 깊은 땅속에 존재한다. 우리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강이나 호수에는 민물의 0.6%가 들어있을 뿐이다. 더욱이 자연의 민물은 지형적 특성에 따라 황토나 흙먼지로 오염되거나, 석회석 등에서 녹아 나온 무기물 때문에 '센물'이 되기도 한다. 수중 생태계의 불균형에 의한 부영양화(富營養化)로 유기물에 의해 썩어버린 물도 많다.

그래서 지구촌에서 깊은 산 속 옹달샘의 수정처럼 맑은 물은 정말 드문 예외다. 사람이 등장하기 전부터 그랬다. 실제로 황허(黃河).아마존.나일.인더스.티그리스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탁하게 오염된 물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괴롭혔던 장티푸스나 콜레라를 일으키는 세균도 많다. 이제는 65억 명을 넘어서는 많은 사람이 쏟아내는 생활 하수와 배설물이 수질을 심각하게 오염시키고 있다. 식량 생산과 각종 산업활동에서 배출되는 오염 물질의 양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리가 안전하고 깨끗한 수돗물을 마음대로 마실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100년도 되지 않았다. 염소 소독, 오존 소독, 화학 응고, 여과, 흡착, 이온교환을 비롯한 다양한 화학적 정수(淨水) 기술이 만들어낸 기적이다. 우리가 마실 물은 우리 스스로의 노력으로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 냉혹한 자연의 현실이다. 오늘날 우리의 평균 수명이 80세를 바라보게 된 것도 우리 스스로 깨끗한 물을 만들게 된 덕분이다.

아직도 깨끗하고 안전한 수돗물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먼 나라가 아니라 바로 우리 농촌의 이야기다. 강물과 지하수의 오염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수돗물에 대한 공연한 오해와 불신도 문제다. 휘발유만큼 비싼 생수 구입에 쓰는 비용을 수돗물 수질 개선에 투자하는 것이 모두에게 훨씬 더 현명한 일이다. 상수원 오염과 가정의 물탱크와 싸구려 배관에 의한 수질 오염을 방치하고 무작정 수돗물을 불신하는 것은 옳지 않다. 지속적으로 새로운 정수 기술을 개발하고, 수돗물의 생산과 공급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사회적 신뢰를 얻도록 더욱 노력해야 한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화학 과학커뮤니케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