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영화] 뻔뻔한 딕&제인

주연: 짐 캐리·테아 레오니
장르: 코미디
등급: 12세
홈페이지:(dickandjane.co.kr)

20자평: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웃음만은 잃지 말지어다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하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개그맨 김형곤씨는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이 말을 즐겨 인용했다고 한다. 당장 사는 게 괴롭고 힘들어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람은 "억지로라도 웃어라. 힘들 때 더 웃어라"는 김씨의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억지로라도 웃다 보면 어느새 기분이 좋아질 수 있고 그러면 혹시 행복한 일이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뻔뻔한 딕&제인'(30일 개봉)이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도 바로 그것이다. 영화 속 상황은 도저히 웃음이 나올 수 없는 심각한 위기지만 영화는 관객에게 일단 웃고 나서 생각해 보라고 권한다.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코미디언 짐 캐리의 엉뚱하고도 유쾌한 연기를 보고 있자면 웃음은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에게는 비극을 희극으로 바꾸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듯하다.

주인공 딕(캐리)은 잘나가는 대기업 홍보맨이다. 어느 날 갑자기 임원승진을 통보받고 회장의 집에서 식사를 함께하자는 초대까지 받는다.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는 그는 뒤뜰에 수영장을 만든다, 정원에 잔디를 새로 깐다 하며 난리를 친다. 맞벌이하는 아내 제인(테아 레오니)에게는 직장을 그만두고 살림만 하라고 권한다.

그러나 딕의 승진은 회장의 음모였다. 회장은 딕에게 TV의 생방송 경제 대담 프로그램에 나갈 것을 지시한다. 별생각 없이 TV에 출연한 그는 예상치 못한 곤경에 처한다. 사회자는 딕의 회사가 투자자들에게 사기를 치고 회장은 이미 돈을 빼돌리지 않았느냐고 냉혹하게 추궁한다. 사전에 아무런 대비가 없었던 딕은 어정쩡하게 얼버무리지만 사태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주가는 폭락하고 결국 회사는 문을 닫는다.

이렇게 해서 딕은 졸지에 직장을 잃게 된다. 허탈한 마음으로 집
에 돌아오니 아내는 이미 직장을 그만둔 뒤다. 부부가 한꺼번에 실업자가 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퇴직금은 한 푼도 없다.

직원들의 퇴직금은 모조리 회사의 주식에 투자됐는데 주가가 폭락해 휴지조각이 됐기 때문이다. 거리에 실업자가 쏟아지면서 집값은 폭락하고 구직행렬은 끝을 모르고 이어진다.

이 정도가 전반전이라면 후반전은 딕과 제인이 콤비가 돼 어설픈 도둑질에 나서는 내용이다. '사흘 굶고 도둑질 않을 사람 없다'는 우리 속담은 이 영화에도 그대로 들어맞는다. 과정은 좌충우돌 소동이지만 결과는 환상적인 해피 엔딩. 딕은 나쁜 부자의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의적 로빈후드' 같은 존재가 된다.

아무리 절망적인 처지에 놓여도 기죽지 않고 농담을 지껄이는 딕의 모습은 관객에게 묘한 애정을 느끼게 해 준다. 영화 속 딕의 상황은 평범한 월급쟁이라면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회계부정으로 지역사회 전체가 경제위기를 겪는 모습은 우리에게 1998년 외환위기 당시의 쓰라린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코미디 영화답게 모든 것을 웃음으로 해결하는 능력이 돋보인다. 여기에는 딕의 바보 같은 행동에서 유발되는 즉흥적인 웃음도 있지만 두 얼굴의 미국 사회에 대한 비웃음과 풍자도 가득하다. 이 영화가 여느 코미디 영화와 다른 점이다. 특히 천박하고 이기적인 경영자들에 대한 딕의 복수극은 관객에게 통쾌한 느낌을 준다. 부분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연결도 눈에 띄지만 관객을 웃기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하면 그런대로 넘어갈 만하다.

영화가 끝난 뒤에는 제작진 등의 이름을 올리는 엔딩 크레딧을 눈여겨볼 것을 권한다. "특별히 감사드립니다"라는 대목에는 엔론.월드콤.타이코.아델피아.아서앤더슨 등 부실기업 전직 임직원들의 이름이 이어진다. 모두 영화에서 딕이 근무했던 부실기업의 모델이 된 회사들이다. 회사가 망한 뒤 회장이 "나도 세계 경제의 일부일 뿐이야"라는 무책임하고 알쏭달쏭한 말을 남기고 도망치는 장면 등 일부 에피소드는 이 사람들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고 한다.

주정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