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통일분규」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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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전 국민의 가슴을 죄게 했던 판문점「6·10」남북학생회담」은 경찰의 원천봉쇄 작전에 의해 저지됐다. 마치 작년 6월 10일의 「박종철 사건 은폐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대회」가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된 것과 흡사하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작년의 사태가 그러하듯 올해의 통일분규도 이제 본격화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양측에서 수 만명 규모로 동원된 학생과 경찰은 서로 공방을 계속하는 동안 많은 사람이 다치고 연행됐다. 학생들은 손가락을 베어 혈서를 썼고 며칠씩 학업을 중단하며 철야했다. 엄청난 낭비다.
이런 손실을 막으면서 통일 노력과 남북대화를 효율적으로 전개하기 위한 방안이 각 부문에서 검토돼야 한다.
먼저 정부는 보다 우월하고 과감한 정책을 개발하여 통일운동의 이니셔티브를 잡아야 한다. 통일문제나 남북 관계에 관한 한 지속적으로 연구해 온 것은 정부다. 대북 정책의 주체도 역시 정부다.
정부가 앞서가지 못하고 민간부문의 압력에 밀려 뒤따르다 보면 대사를 그르칠 우려가 있다.
민주화운동은 내부문제이기 때문에 민주화 자체로 끝날 수 있지만, 남북문제는 상대가 있는 만큼 정부가 할 일을 못하면 중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젊은 학생들의 통일의지를 수용하여 남북학생 교류를 주선하겠다는 노태우 대통령의 발언대로 정부는 보다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정책으로 임해야 한다.
학생교류는「남북 20개 시범사업」종목에도 있는 정부의 기본방침중의 하나다. 정부가 주선한다면「창구일원화」에도 어긋나지 않는다.
북한도 학생회담을 지지하는 만큼 북한측에 강력히 요구하여 실현시키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정당이나 재야단체들은 대학생들의 통일운동에 대해 보다 확고하고 책임 있는 자세를 정립해주기 바란다. 민의를 수렴하고 종합하여 입법화하거나, 정부에 전달하여 정책화하는 것은 1차 적으로 정당의 과제다.
그러나 요즘의 우리 정당들은 통일 문제에 관한 확고한 정책이나 방침을 세우지 못한 채 학생들의 요구에 기회주의적 자세와 편의적 태도로 대응해 왔다. 더구나 실현성 없는 발언을 통해 젊은 대학생들에 영합하려 했던 일부 정치인과 재야단체는 그것이 국민의 일반의사에 배치된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스스로 반성하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대학생들은 통일운동이 민주화운동과 그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 학생들의 의사는 민주사회의 의사전달 체계 및 정책결정 과정에 따라 여론과 정당을 통해 의회와 정부에 반영시키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학생들이 기성체계를 거부하고 스스로 통일의 주체가 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학생들은 통일운동의 선봉은 될 수 있으나 결코 주체는 될 수 없다. 교류의 대상은 될지언정 주체가 돼서도 안 된다.
남북학생회담으로 이산가족, 올림픽 공동개최 등 기본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기보다는 학생교류를 통해 학생신분에 맞는 분야에 대한 세미나와 토론, 견학 등 학구적인 활동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6·10회담」은 저지됐으나 대학생들의 저항은 계속되고 있다. 이런 낭비는 빨리 끝나야 한다. 그것은 정치권의 전향적 적극성과 학생 권의 합리적 순수성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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