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갈등 조장하는 사법 양극화 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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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가진 자의 '유전무죄'와 못 가진 자의 '무전유죄'는 평등을 생명으로 여기는 사법에 정의가 무너져 있음을 말해준다. 사법의 모습이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하다면 가지지 못한 자에게 상대적 박탈감과 불신의 분노를 키우게 한다. '지위의 높고 낮음이나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 사법이 불공정하다'는 대다수 국민의 의식에는 검찰과 법원 모두에 대한 원망이 배어 있다. 그럼에도 천정배 법무부 장관은 지난 23일 "대우그룹 분식회계의 규모가 미국 월드컴에 비해 훨씬 컸지만 사장 한 사람이 5년형을 선고받은 게 고작이었다"며 마치 검찰은 잘못이 없는 것처럼 법원을 공개 비판했다. 하지만 정작 두산그룹 분식회계와 횡령 사건에서 책임자들을 불구속 기소한 것은 검찰이었으니 '네 탓'으로 돌릴 일이 아니다.

물론 '전관예우'는 바로잡아야 한다. 고위직 법관 출신의 변호사가 사건을 부탁할 때가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는 어느 법관의 공개 고백이 그 심각성을 일깨운다. 법관이 법과 양심에 따라 심판하지 않고 전관의 부탁에 영향을 받는다면 오해나 불신은 피할 수 없고, 법관의 독립은 이미 상실된 것과 다름없다.

로스쿨도 양극화를 조장하는 사법제도다. 지금 많은 대학은 로스쿨 유치에 사활을 걸고 법학전문도서관.모의법정 등 시설 구축을 위해 고층건물을 짓는 데 수백억원씩 쏟아붓고 있다. 그 결과 연간 2000만원이 넘는 고액 수업료를 내야 로스쿨 진입이 가능하다. 3년간 6000만원이나 1억원 정도의 대가를 지불해야 변호사가 될 수 있다. 또 고등학교 졸업자에게는 판사.검사는 물론 변호사가 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가지지 못한 자에게 로스쿨은 인생 진입의 장벽일 뿐이다. 그래서 로스쿨은 가진 자들의 출세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을 안고 있다. 로스쿨 찬성론자들이 도입 목적으로 내세운 질 높은 법학교육과 국제경쟁력 강화는 양극화를 감추기 위한 허구였음을 일본 로스쿨의 실패 사례에서 읽을 수 있다.

서민을 위한 정권이라면 사법에 있어서 사회적 소수와 약자의 고통을 해소해야 한다. 형량의 편차를 줄이기 위한 '양형(量刑)위원회' 제도를 만들거나, 법관 앞에서의 '구술변론'을 강화하는 것만으로 양극화를 해결할 수 없다. 사법의 양극화는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 못 가진 자에게 나눠주는 식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또 현 정권이 서민의 편이라는 도식적 이미지 만들기로도 해결할 수 없다.

현재 정부의 사법개혁에는 지난해 8.31 부동산 종합대책을 내놓으면서 선전한 '초정밀 유도탄' 같은 대책이 없다. 오히려 대립과 분열을 조장하는 제도를 만들고, 갈등 해결에는 너무 미약한 방안만 놓여져 있으니 사법개혁은 국민의 불신을 그대로 안고 있는 셈이다. 법무부 장관이 "경제 양극화로 인한 서민들의 고통에 사법 양극화가 고통을 더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면 갈등을 조장하는 제도는 과감히 버려야 하고 서민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하창우 변호사·대한변협 공보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