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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재 오닐 “음악은 경청, 비올라 조롱하지 말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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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비올리스트의 활동 영역을 확장해 앙상블 리더, 대중적인 스타 연주자로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는 리처드 용재 오닐. ’찬사에 대한 욕심은 없다. 음악으로 경험을 나누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뉴시스]

비올리스트의 활동 영역을 확장해 앙상블 리더, 대중적인 스타 연주자로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는 리처드 용재 오닐. ’찬사에 대한 욕심은 없다. 음악으로 경험을 나누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뉴시스]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40)은 유명한 연주자다. 클래식 음악가 중엔 특히 대중적이다. 국내에선 2004년 KBS 다큐멘터리 ‘인간극장’으로 용재 오닐의 붐이 시작됐다. 그의 어머니는 한국 전쟁 고아로 미국에 입양됐고, 용재 오닐은 미국인 조부모와 함께 자랐다. 그는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강효 교수에게 ‘용재’라는 한국 이름을 받았고, 비올리스트 최초로 아티스트 디플로마를 땄다. 처음으로 한국에서 공연한 2002년 이후 커피 광고 모델을 비롯해 한국 방문의 해와 유니세프 홍보대사 등을 맡았고 누적 음반 판매량 20만장을 기록한 그야말로 ‘유명한 음악가’다.

9집 앨범 ‘듀오’ 내고 31일 콘서트 #커피 광고에도 나온 스타 연주자 #홀대받던 악기 비올라 널리 알려 #바이올린·첼로와 이중주 선보여 #“각각의 캐릭터 확실히 보여줄 것”

다시 생각해보면 용재 오닐이 유명하다는 건 역설적이다. 비올라는 주인공 악기가 아니다. 바이올린보다 낮고 첼로보다 높은 음역대를 담당하는 ‘애매한 악기’다. 독주자로 연주할 곡도 적다. 비올리스트는 본래 주인공이 아니다. 전 세계 연주자들이 공유하는 농담인 ‘비올라 조크’는 음정을 정확하게 내지 못하는 비올리스트를 둔하고 실력도 없으며 다른 악기의 도움을 받아야 무대에 서는 존재로 묘사한다.

일반적 비올리스트의 이미지와 용재 오닐의 대중성은 잘 연결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는 젊은 연주자가 모인 앙상블 ‘디토’의 창단부터 10년 넘게 함께 한 리더다. 이달에는 9번째 음반을 내놨다. 2005년 첫 음반 이후 ‘겨울 여행’(2007) ‘슬픈 노래’(2010) ‘브리티시 비올라’(2016) 등을 거쳐 이번 앨범은 현악기 연주자들과 함께한 ‘듀오’다. 비올리스트가 앨범 9장을 내는 것은 이례적이다. 그렇다고 언제나 앞으로 나서 일을 주도할 만큼 활발하고 사교성 넘치는 성격인 것도 아니다. 19일 기자간담회에서 용재 오닐은 “나는 내성적인 사람이고 커다란 리더십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라고 했다. 그는 어떻게 비올리스트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는 걸까.

용재 오닐은 기자간담회에서 “최근에 나의 친구인 엘리자베스 매코맥(줄리아드 음악원 이사)에게 앙상블 ‘디토’를 이끄는 게 너무 힘들고 리더의 능력이 없는 것 같다는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고 했다. “매코맥은 내 말을 중단시키고 틀린 얘기라고 했다. 모든 사람은 다양한 많은 성격으로 구성돼 있고, 그 중 하나에 집중해 유형을 나누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낯을 가리는 편이고 주인공이 되기 위해 애쓰지도 않는 용재 오닐도 앙상블을 이끌 수 있다는 자신감을 다시 가지게 된 배경이다.

‘듀오’ 음반에 함께한 첼리스트 문태국, 비올리스트 이수민,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 리처드 용재 오닐.(왼쪽부터). [연합뉴스]

‘듀오’ 음반에 함께한 첼리스트 문태국, 비올리스트 이수민,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 리처드 용재 오닐.(왼쪽부터). [연합뉴스]

그는 비올라의 미래가 밝다고 내다본다. “로렌스 파워, 앙트완 타메스티 같은 독주 비올라 연주자가 늘어나고 새로운 비올라 작품도 많이 나오고 있다”며 “더이상 놀림이나 조롱을 당할 악기가 아니다”라고 했다. 비올라가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본다. “우리 비올리스트들은 비올라를 연주함으로써 세계를 지배하려는 게 아니고, 나는 칭송 받기 위해 연주하지 않는다.” 주목받는 스타 연주자가 아닌 음악가로서 소명을 가지면서 할 일이 더 많이 보인다고 했다. “우리는 사람이고 언젠가는 죽어 없어지지만 음악은 사라지지 않는다. 영원히 남을 음악을 통해 감정을 공유하고 싶고 이런 소명이 나의 존재 의미다.”

‘9집 비올리스트’로서 감사함도 표현했다. 용재 오닐은 “요즘처럼 음반 산업이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더욱 감사한 일이다”라며 “최근 몇년동안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작품까지 녹음할 수 있었다. 특히 비올리스트로서 꿈이었던 윌리엄 월튼의 협주곡을 할 수 있었고 현대 작곡가들인 벤자민 브리튼, 엘리엇 카터 등을 선곡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번 앨범에서는 바이올린·비올라·첼로와 각각 이중주를 선보였다.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와 헨델-할보르센의 파사칼리아와 모차르트 듀오를, 첼리스트 문태국과 베토벤의 듀오와 힌데미츠의 스케르초를 녹음했다. 비올리스트인 이수민과는 프랑크 브릿지, 조지 벤자민의 현대 음악을 함께 연주했다. 용재 오닐은 “솔로 연주는 무대 위의 독백과 같다. 반면 듀오 연주는 각각의 캐릭터를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드라마에 비교할 수 있다. 앙상블뿐 아니라 개인의 기량이 돋보이는 조합이 이중주”라고 설명했다.

보통 비올리스트의 앨범은 편곡 작업을 거친다. 다른 악기를 위해 쓰인 곡을 비올라로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재 오닐은 이번 앨범을 위해 작곡가가 원래 비올라를 포함해 쓴 작품만을 골라 비올라의 자존심을 강조했다. 그렇다고 남의 소리를 잘 들어주는 비올리스트로서의 특징은 버리지 않았다. 그와 10년 넘게 함께 연주하고 이번 앨범에도 참여한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는 “용재 오닐은 자기 의견을 먼저 내세우기보다는 상대방의 의견을 먼저 듣는다”고 했다.

신지아는 “바이올린은 비올라와 듀오로 만나면 날카로운 소리만 부각될 우려도 있는데 용재 오닐의 배려 많은 성품 덕분에 따뜻한 음색이 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첼리스트 문태국은 “첼로와 비올라는 자칫 음역이 부딪힐 수도 있는데 우리는 서로 어떻게 하면 더 상대를 돋보이게 해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비올리스트 이수민은 “대화하는 느낌으로 행복하게 했다”고 말했다. 네 연주자는 음반에 수록된 곡들로 31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선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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