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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한국 기업이 한국에 투자하게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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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상렬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이상렬 국제부장

이상렬 국제부장

청년 실업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위기의식은 옳다. “방치하면 재앙 수준이 될 것”이란 진단은 틀리지 않았다. 실업의 장기화는 국가의 손실이다. 일자리를 갖지 못한 상태론 결혼과 출산이 꺼려진다. 실업은 노후, 의료비, 국가 재정 등 거의 모든 부문에 영향을 미친다. 청년 일자리는 그래서 국가의 경쟁력과 직결된다.

지난 10년간 정부 청년실업 대책 번번이 실패 #가장 효과적인 일자리 창출은 기업들에 달려

청년 실업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각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러나 해소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청년실업률 평균치는 13.0%. 2017년 기준 한국은 10.8%로 8번째로 낮다. 그런데 한국보다 청년실업률이 낮은 7개 국가에서 공통된 현상이 발견된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후유증이 한창이었던 2009년 이래 청년실업률이 꾸준히 하락해온 것이다. 금융위기의 주범인 미국만 해도 2009년 17.6%에서 2017년 9.2%까지 떨어졌다. 일본은 같은 기간 9.2%에서 4.7%로 하락했다. 이 기간 한국은 9.8%에서 10.3%로 뛰었다. 지난 10년간 한국은 청년실업 증가를 막는 데 실패해온 것이다.

정부가 향후 3~4년간 중소기업에 취직하는 청년에게 실질소득을 연 1000만원 이상 올려준다는 ‘특단의 대책’을 내놓은 것은 이런 문제 인식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일각에선 중소기업에 먼저 취업했다는 이유로 선배가 신입 후배보다 600만원 이상 정부 지원을 덜 받게 되는 점을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이런 식의 임금 격차는 정부에 대한 불만과 선후배 간의 불협화음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위화감은 오히려 작은 문제다.

치명적 문제는 몇 년 후에 찾아온다. 정부 지원이 끊기고 나면 청년들은 어떻게 할까. 갑자기 연 소득이 1000만원 이상 줄어든 상황을 그들은 어떻게 견뎌 나갈까. 이들이 떠나면 기업체의 고민도 커진다. 기껏 몇 년간 키워놓은 신입이 빠져나간 공백을 메우긴 쉽지 않다. 그때 정부는 대규모 재정 지원을 계속할지 말지를 놓고 심각한 딜레마에 빠질 것이다.

절박한 위기감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실업대책이 번번이 과녁을 빗나가는 것은 일자리를 누가 만들고, 어떻게 생겨나는지에 대한 인식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일자리는 기업이 만든다. 정부와 공공부문이 만드는 데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국내 주요 대기업 7곳은 2010~2016년 국내 고용을 2만명 늘렸지만, 해외에선 15만 명을 더 채용했다. 지난해 우리 기업들의 해외 투자는 2013년보다 53% 증가했다. 기업들이 이렇게 해외로 빠져나가는데 국내 일자리가 착실하게 생겨날 리 만무하다.

청년 실업난 해결에 성과를 거두고 있는 나라들엔 몇 가지 공통 요인이 발견된다. 규제 완화와 감세를 통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려는 정책이 정권을 초월해 일관돼왔다는 점이다. 일자리를 만드는 공장을 유치하기 위한 ‘당근’도 많다.

양질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노사 협력도 빼놓을 수 없다. 노조는 파업을 자제하고 회사는 고용 창출에 적극적인 일본과 독일의 자동차 산업이 대표적이다. 미국에도 노조가 복지혜택까지 축소해 공장 이전을 막고 일자리를 사수해내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

지난 2014년 늦여름 미국 보스턴에서 하버드대의 석학 데일 조르겐슨 교수를 인터뷰했다. 미국 경제가 길고 긴 침체에서 벗어나면서 달러를 무한공급하던 양적완화정책의 종료를 앞둔 시점이었다. 그때 조르겐슨 교수는 양극화와 인구변화 등 ‘한국병’에 대한 처방으로 “한국 기업들이 해외가 아니라 한국에 투자할 수 있게 장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1980년대 일본 기업들이 활동무대를 해외로 옮기고 해외투자를 늘리면서 상당한 후유증을 겪었다는 얘기도 들려줬다.

“한국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투자하고, 효율적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건 바로 한국 기업들입니다.”

80대 노교수의 당부가 귀에 쟁쟁하다.

이상렬 국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