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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부총리, 고생 많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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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고군분투하고 있다. “어느 행사에 갔더니, 다들 김동연에게 ‘고생이 많습니다’라고 해요.” 한 전직 관료의 전언이다. “명색이 부총리지 실질적으론 정부 경제팀의 말석에 앉아 있는 처지를 두고 하는 말”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정부 경제팀장, 실세 수석·장관보다 사실상 파워 약해져 #경제 컨트롤타워 바로 세우지 않으면 후유증 감당 어려워

그렇게 볼 만한 일들이 꽤 있다. 지난해 7월 증세론이 가열됐을 때 김동연은 “굉장히 민감하다”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올해 소득세와 법인세 최고세율이 각각 42%와 25%로 인상됐다. 감세 추세라는 세계적 흐름과는 거꾸로다. 당시 김동연의 소신을 꺾은 것은 경제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한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의 소신이었다. 김 장관은 178조원의 문재인 정부 공약 이행 비용과 관련해 “재정당국에서 내놓은 재원 조달방법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면서 증세론에 불을 지폈다.

올 8월 윤곽을 드러낼 보유세 개편도 마찬가지다. 김동연은 지난해 보유세 증세론이 나오자 “부동산 투기 억제를 위한 보유세 인상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거듭 밝혔다. 하지만 올해 경제정책방향에 “보유세 개편을 검토한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게다가 보유세는 기재부의 손을 사실상 떠났다.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를 관리하는 국정기획위원회가 설치하는 재정개혁특별위원회가 보유세를 주도하게 되면서다. 기재부에선 재경개혁특별위원회에 세제실장과 재정관리관을 정부측 당연직으로 참여시키는 정도의 역할만 한다.

부동산 정책도 비슷한 상황이다. 지난해 8·2 대책 발표 다음날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은 “부동산 가격 문제에 대해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며 강남 부동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부동산은 금융·주택 공급과 직결돼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이 크다. 그래서 부총리가 정책을 조율해 온 분야다. 금융위원회와 국토교통부는 이에 맞춰 실무를 챙기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들 분야 전문가가 아닌 사회수석이 부동산정책의 컨트롤타워라고 못 박은 것이다.

고용노동도 마찬가지다. 공약대로 3년 내 최저임금 54.5% 인상에 시동이 걸리자 김동연은 즉각 3조원의 일자리안정자금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국민 혈세로 민간 근로자의 월급을 보전한다는 정책실험을 즉각 뒷받침하고 나선 조치였다. 결국 청와대의 실세 수석들과 정치권 출신 장관들이 정책을 주도하고 김동연은 뒷수습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실천운동가 출신들이 청와대 실장·수석 자리를 꿰차고 전례 없는 정책실험에 나서면서 정부의 경제정책 종합 컨트롤타워인 김동연의 역할이 쪼그라든 것이다.

“그래도 김동연이니까 이 정도 해내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장관이 업무보고를 준비하고 부총리가 부처별로 초도순시를 돌던 1970년대의 부총리와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실세 수석과 장관들에 둘러싸여 동분서주하며 그나마 버티고 있는 것도 대단하다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TP) 가입을 올 상반기 내 결정한다”고 소신을 밝힌 것은 신선해 보인다. 앞서 산업경쟁력강화회의에서 성동조선·STX조선에 대한 원칙 처리를 강조한 것도 잘한 일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그 역할이 충분하지 않다. 추경 중독증만 봐도 그렇다. 올해 429조원 규모 수퍼예산의 잉크가 채 마르지도 않았는데 김동연은 어제 청와대 청년 일자리 보고대회에서 또다시 추경 카드를 꺼내 들었다. 문 정부의 ‘일자리 및 소득 주도 성장’이 2월 실업자 126만명이라는 ‘고용쇼크’를 통해 사실상 파산한 것이나 다름없는데도 투자환경을 바꿔 고용을 늘리는 근본적 대책 대신 또다시 효과도 없는 미봉책을 동원하려는 것 아닌가. 그러니 지방선거용이란 손가락질을 받는 것이다. 한국 경제가 잘되려면 “부총리가 정책실험의 설거지나 하고 다니느라 고생이 많다”는 얘기가 나와선 안 된다. 경제 컨트롤타워가 겉돌수록 정책실험의 후유증만 깊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