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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단체 육성해야 시민사회 발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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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그런데 세 주체의 역학관계에서 여전히 정부의 영향력이 우위를 점하고 시장의 영향력도 만만치 않다. 따라서 세 주체의 균형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성장이 필요하다. 시민사회의 성장은 시민사회단체들의 활성화가 그 요체고, 그것은 또 정부에 대한 견제와 협력을 위해 시민이 자발적으로 그들 단체에 참여함으로써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시민은 시민사회단체의 역할에 대한 중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막상 참여하거나 정기적으로 회비를 내진 않는다. 즉 시민사회단체들의 활동으로 편익은 얻어도 부담은 회피하겠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견제와 협력의 대상인 정부가 오히려 시민사회단체를 지원하고 육성하는 역설적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시민사회의 성숙을 돕는 것은 잘못하는 일이 아니라 칭찬할 일이다. 정부란 본래 취약한 분야를 보호하고, 북돋워 주는 기능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년 3월이면 지방자치단체들은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보조금 지원에 대한 심의를 벌인다. 그러나 그때마다 논쟁거리는 시민(운동)단체와 구별되는 '사회단체'에 대한 운영비 지원 문제다.

소위 진보적인 시민단체들은 보수적 사회단체에 대한 운영비 지원이 정부에의 종속화를 가져온다며 반대한다. 이제 3년이라는 유예기간을 거친 만큼 사회단체에 대한 지원은 사업비 지원에 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민단체와 달리 사회단체의 자생력은 짧은 기간 안에 확보하기 어렵다. 우선 비자발적 참여회원이 대다수를 차지해 회비 납부를 기대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방대한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근 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사회단체가 한때 정권 안보의 수단으로 이용된 적이 있긴 했다. 그러나 오늘과 같이 시민 권력이 증대하고 정부의 정통성이 확보된 상태에서 관에의 종속화를 우려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더구나 자연재해가 빈발하는 오늘날 대규모 봉사 자원을 모을 수 있는 조직은 사회단체뿐이다.

잘 알다시피 시민단체는 기획력은 뛰어나지만 손발이 없고, 사회단체는 기획력은 약간 떨어지나 손발이 확실하다. 그러므로 사회단체는 방대한 조직의 운영과 비상시 자원봉사 동원을 위해서라도 지원 근거 법령이 있는 한 운영비 지원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만약에 운영비 지원이 중단되면 애써 조직해 놓은 시민 조직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다. 다시 그만한 조직을 재건하려면 거의 불가능하거나 엄청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진정으로 시민사회의 성장을 앞당기기 위해서라면 정부가 나서 사회단체의 건전한 육성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선을 행하지 않는 것보다는 위선이 차라리 나은 것처럼 시민의 의식이 확장되기 전까지는 의도적인 사회단체 육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창기 대전대 교수·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