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도 '맹모삼천지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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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대학은 양적으로는 성장했으나 질적으로는 경쟁력이 없다. 연구도 교육도 외국 대학에 비해 뒤지는 편이다. 그러나 최근 대학마다 경쟁력 향상을 위해 중장기 프로젝트를 마련하고 실행에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대학생이 참 많다. 통계로 보면 입이 딱 벌어진다. 대학생(전문대생.대학원생 포함)이 무려 350여만 명이나 된다. 전체 인구의 7.5%가 대학에서 '지금은 공부 중'인 것이다. 1965년 0.5%, 1980년 1.4%였던 데 비춰 비중으로 따져도 15~5배로 늘어난 것이다. 2004년 기준 고교생의 전문대 이상 고등교육진학률은 81%나 된다.

대학도 무지 많다. 4년제 대학은 200개(경찰대 등 특수대 제외), 전문대는 160여개나 된다.

몇 년 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이 OECD 가입 49개국을 대상으로 대학의 경쟁력에 대해 조사했다. 그 결과 한국의 고등교육 이수율은 34%로 5위에 랭크됐다. 대학 졸업자의 비율이 회원국 중 다섯 번째라는 얘기다. 그러나 질은 달랐다. 대학의 품질 측정 지표인 대학교육의 효율성은 뒤에서 세 번째, 47위였다. 거의 꼴찌나 다름없다. 세계 12위에 드는 우리나라 경제규모에 비해 대학의 경쟁력은 뒤져도 너무 뒤지는 것이다.

많은 졸업생을 배출하지만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제대로 길러내는 것도 아니다. 사회의 수요와 동떨어진 교육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해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대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그 결과 대졸자를 채용한 뒤 실무 투입까지는 29.6개월이 걸렸다. 고용한 뒤 2년 반이 지난 뒤에야 제대로 회사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그 기간 중 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기업이 들이는 재교육비는 1인당 1억여 원이나 됐다. 대학 4년 등록금의 3배가 넘는 돈이 그들 교육에 다시 드는 것이다.

2002년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조사 결과도 비슷했다. 학생들이 대학에서 습득한 지식과 기술은 대기업이 필요로 하는 수준의 26%에 불과했다. 도저히 그대로는 써먹을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외국인들은 우리 대학생을 어찌 보고 있을까. 3년 전 무역협회가 국내 진출한 59개 외국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했다. 그 결과 87%가 대학에서 가르치는 것과 산업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것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답했다. 또 98% 이상이 한국 직원에 대해 재교육이 필요하다고 느낀다고 응답했다.

한국 대학 교육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말해준다. 쉽게 말해 우리나라 대학들은 쓸 수 없는 인재를, 그것도 대량으로 생산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길러내는 대학생들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은 곧 우리 대학의 경쟁력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학생들을 제대로 공부시키지 않고 연구도 잘 안한다는 말이다. 서울대가 세계 100위 대학에 들지 못한다는 것은 이 같은 우리 대학의 질 저하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지금까지 대학들이 학과 증설과 학생 증원 등 규모 경쟁에만 주력한 까닭이다." 대학교육협의회 이현청 사무총장의 말이다. 지난 20여 년간 대학도, 정부도 학생 수를 늘리는 데만 힘을 쏟았을 뿐 공부를 잘 시키는 데는 소홀했다는 것이다.

증원을 위해 문어발식으로 학과를 늘린 까닭에 우리 대학의 학과 수는 557개나 된다. 백화점처럼 없는 상품(학과)이 없는 셈이다. 사학 치고 제2 캠퍼스가 없는 곳도 드물다.

대학들은 최근 들어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 해결책 모색에 적극 나서고 있다. 수도권 대부분의 대학들은 2010년 또는 2013년까지 국제적인 수준의 대학으로 진입한다는 비전과 목표 아래 장기 플랜을 짜고 그 실천에 나서고 있다. 학생들을 더 많이 공부시키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연세대의 변화는 가히 충격적이다. 지방에 더 큰 캠퍼스를 세우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인천 송도에 55만평의 부지를 확보했다. 현 신촌 캠퍼스의 두 배에 가깝다. 이곳에 학부 캠퍼스와 기숙사를 짓는다. 2010년부터 신입생들은 1년간 의무적으로 이 기숙사에서 먹고 자며 공부해야 한다. 학생들을 더 많이 공부시키기 위해 캠퍼스를 아예 옮기는 것이다.

"신촌의 대학문화는 소비적 향락문화에 젖어 있다. 학생들은 귀중한 시간을 유흥에 낭비한다. 그래서는 동년배의 선진국 학생들을 이길 수 있겠는가."

대학 관계자는 덧붙인다. "기숙사 생활을 하면 3배 더 공부하게 된다. 체력도 단련할 수 있어 좋고 단체 생활을 통해 협동심과 리더십도 기를 수 있다. "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 양성에 뛰어드는 대학도 있다. 성균관대는 졸업 후 기업에서 바로 쓸 수 있는 교육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대학 반도체학과는 삼성전자의 요구를 수용, 만들었고 교육도 이 회사와 함께 한다. 이론과 실습, 기업 현장 실습을 다 하게 된다. 기업인들이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강사진의 절반을 삼성전자 박사급 전문가로 구성했다. 학생들은 재학 중 6개월가량을 반도체 공장과 연구소 등에 배치돼 실무 교육을 받는다. 3학년이 되면 삼성전자 입사시험을 치르고 합격하면 장학생 자격으로 학교에 다니고 졸업 후 입사하게 된다. 졸업할 때는 외국 유명 공과대학처럼 전원 '반도체 칩'을 졸업 작품으로 만들어야 한다. 철저한 맞춤학습인 셈이다.

특성화를 통한 경쟁력 제고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중소기업을 위한 인재양성에 주력하는 곳도 있다. 한성대는 서울 도심 성북동에 위치해 있다. '도심속 첨단 디지털 콘텐츠 프론티어'를 표방한다. 중소기업을 위한 디지털 콘텐츠 산업분야의 전문인재를 양성한다는 목표를 두고 있다. 한양대는 공대가 강한 대학 특성을 반영, 핵심소재 산업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 양성에 주력할 방침이다. 성균관대는 유교가 강한 특성을 살려 중국지역전문가 10만 명을 양성한다는 목표도 잡아두고 있다. 중국전문대학원도 설립한다.

국민대는 조형대학과 자동차공학전문대학원을 특성화했다.

(조인스닷컴 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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