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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리맨 신화에서 검찰 포토라인까지, MB 영욕(榮辱)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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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사원에서 출발해 12년 만에 사장을 거쳐 대통령까지 된 ‘샐러리맨의 신화’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포토라인에 선 다섯 번째 전직 대통령까지. 14일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된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인생 역정이다. 그는 롤러코스터를 타듯 굴곡진 삶을 살았다.

뻥튀기 장사하던 고학(苦學)과 학생운동

이 전 대통령은 1941년 12월 19일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7남매 중 다섯째였다.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오던 길에 배가 가라앉았고 이후 가난과의 전쟁으로 젊은 시절을 보냈다. 술지게미로 끼니를 때워야 할 정도로 집안은 가난했고, 가족이 세 들어 살던 집은 집 한 채를 여러 칸으로 나눠 방을 만든 ‘벌집’이었다. 바로 옆방엔 거지 가족이 살았다고 한다.

고등학생 때는 뻥튀기 장사를 했고, 고려대 경영학과 시절에는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며 등록금을 마련했다. 가난을 피해 군에 자원입대했지만, 기관지확장증 진단으로 강제 퇴소당했다.

군 전역 후 이 전 대통령이 택한 길은 학생운동이었다.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이 한일 국교정상화를 추진하자 ‘굴욕외교’라며 학생시위를 주도했다. 이 일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아 6개월을 복역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2년 6월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기뻐하고 있다.[중앙포토]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2년 6월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기뻐하고 있다.[중앙포토]

샐러리맨 신화와 화려한 정계 입문

회사원으로 MB는 신화였다. 1965년 현대건설에 입사해 5년 만에 이사가 됐고, 10년 만에 부사장, 12년 만에 사장, 23년 만에 회장이 됐다. 입사 후 1년 만인 1966년 태국 고속도로 건설 현장 파견 근무 시절, 폭도들의 습격을 받고도 금고를 품에 안고 놓지 않은 일화는 전설처럼 회자됐다. 그의 현대건설 시절 성공은 1990년 ‘야망의 세월’이라는 드라마로 전국에 전파됐다.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국민당을 창당하고 대선에 도전하자, 이 전 대통령도 정치인의 길을 택한다. 다만 국민당 대신 여당인 민주자유당에 입당해 1992년 14대 총선에서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는 신한국당 소속으로 서울 종로에 출마한다. 당시 청문회 스타인 노무현 후보, 4선의 이종찬 후보 등과 맞붙어 승리했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은 “난 여러분 잘살게 만드는 데만 관심이 있다. 잘 살려면 날 찍으시라”고 했다.

하지만 1998년 선거법 위반으로 40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자 MB는 정계를 떠나 미국으로 간다. 워싱턴 근교의 좁은 아파트에서 가구 없이 빈 박스 위에 전화기를 올려놓고 사는 등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시기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만든 TV광고. 욕쟁이 할머니가 ’우린 먹고 살기가 힘들어 죽겠어“, ’밥 처먹었으니 경제는 꼭 살려라“ 등의 경제대통령 후보 모습을 강조한다. [유튜브 캡처]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만든 TV광고. 욕쟁이 할머니가 ’우린 먹고 살기가 힘들어 죽겠어“, ’밥 처먹었으니 경제는 꼭 살려라“ 등의 경제대통령 후보 모습을 강조한다. [유튜브 캡처]

"밥 처먹었으니 경제는 꼭 살려내라"  

이 전 대통령은 2000년 8월 15일 광복절 특사로 사면ㆍ복권되며 재기를 꿈꾼다. 이 전 대통령은 2002년 서울시장에 도전해 성공한다. 청계천 복원을 공약으로 내세워 실현했고, 서울광장·버스 중앙차로 등의 업적을 쌓는다. 대통령 도전의 결정적 토대가 됐다.

2006년 6월 서울시장에서 퇴임한 이명박은 ‘한반도 대운하’ 등을 내걸며 대선 레이스에 돌입한다. 이듬해 8월 사실상 결승전이었던 한나라당 당내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누르고 대선 후보가 됐다. 그리고 “밥 처먹었으니 경제는 꼭 살려라”고 한 CF 광고처럼 경제를 내세워 17대 대선에서 49%의 득표율로 당선된다. 2위와 531만여표 차의 압승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8년 5월 청와대 춘추관에서 쇠고기 파문과 관련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기에 앞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중앙포토]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8년 5월 청와대 춘추관에서 쇠고기 파문과 관련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기에 앞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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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정점에서 무너진 신화  

권력의 정점에서 신화는 되려 흔들렸다. 이 전 대통령은 취임 초에는 ‘고소영 ’(고려대ㆍ소망교회ㆍ영남)’ ‘강부자(강남 부동산 부자)’ 내각 파문에 휩싸였고, 3월에는 친박 공천 배제로, 4~5월에는 광우병 쇠고기 파문으로 홍역을 치른다. 결국 이 전 대통령은 취임 100일도 안 돼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2008년 5월22일)라며 사과 기자 회견을 한다.

대운하 사업 대신 추진한 4대강 사업은 임기 내내 논란이 됐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친형인 이상득 의원 등 측근 그룹들의 각종 비리도 터져 나왔다. 퇴임 후에도 '사자방'(4대강·자원외교·방위사업 비리) 등이 따라 다녔다. 야당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은 사자방 국정조사 추진 등으로 이 전 대통령을 압박했다.

다만 G20 정상회담과 핵 안보 정상회의를 한국에서 개최하고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는 등 외교적 성과를 낸다. 미국발 금융위기 등을 무난히 넘겼고, 녹색성장을 앞세워 녹색기후기금 사무국을 유치한 것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대통합민주신당 선대위원 등 당직자들이 2006년 12월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2001년 1월 광운대학교 최고경영자 과정 강연중 BBK를 설립했다고 발언한 동영상을 공개하고 있다.[중앙포토]

대통합민주신당 선대위원 등 당직자들이 2006년 12월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2001년 1월 광운대학교 최고경영자 과정 강연중 BBK를 설립했다고 발언한 동영상을 공개하고 있다.[중앙포토]

결국 발목 잡은 다스

이 전 대통령을 검찰 포토라인 앞에 서게 한 BBK와 다스 실소유주 문제 등은 오래된 의혹이다. 2007년 대선 후보 시절 경쟁자였던 박근혜 후보 측이 공세를 퍼부었고,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도 가세했다. 당시 정봉주 의원이 ‘BBK 저격수’ 등을 자처했다.

대선을 사흘 남겨둔 그해 12월 16일, 이 전 대통령이 2000년 10월 한 강연에서 “올해 1월 BBK라는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동영상이 공개되며 다시 홍역을 앓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재수사를 지시했고, 국회에서는 특검법이 통과됐다. 결국 당선된 이후인 2008년 2월 정호영 특검팀이 해당 의혹에 대해 “근거가 없었다”고 결론 내며 MB는 혐의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BBK와 다스는 MB의 아킬레스건이었다. 정호영 특검팀 수사 10년 만인 2018년 이 전 대통령은 다시 검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된다. 현재 검찰은 다스를 사실상 이 전 대통령의 차명 재산으로 결론을 냈다. 이 전 대통령은 뇌물수수, 횡령ㆍ배임, 특수활동비 유용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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