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청소년 질서의식 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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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6일 롯데월드의 무료개장 행사에 수만의 인파가 몰려 아수라장이 연출되자 이 회사 마케팅 담당 김모 이사가 기자회견을 열어 한 말이다. 그는 "손님의 안전과 편안을 중시했으나 예기치 못하게 많은 손님이 몰리는 바람에 이렇게 됐다"며 "정식으로 9시에 문을 여는데 사람들이 참지 못하고 밀고 들어와 사고가 생겼다"고 해명했다. '회사로서는 최선의 준비를 다했다. 무질서한 입장객에게 사고의 책임이 있다'는 항변으로 들렸다. 하지만 롯데월드가 애써 눈감은 대목이 있다. 이날 몰린 인파의 70~80%가 10대 청소년들이었다. 다친 35명의 관람객 중 31명이 11~16세의 어린 학생들이었다. 혈기왕성한 미성년자에겐 판단력과 참을성이 부족하게 마련이다. 이들에게 '문화의식' 결핍을 따지며 책임을 묻는 것은 궁색하다. 한정된 공간에 인파가 집중되면 아무리 문화의식이 성숙한 성인이라도 질서를 지키는 게 힘들어진다.

취재 중 만난 한 중학생은 "매표소 입구에서 사람들이 넘어지는 걸 보고 서려 했지만 뒤에서 사람들이 밀려들어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고 전했다.

롯데월드가 충분한 준비를 했는지도 의문이다. 평소보다 3배 많은 직원을 배치했다지만 6만여 명이나 되는 손님들을 관리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한 여고생은 "친구들이 넘어져서 울고불고하는데도 도와주는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롯데월드 관계자들은 기자들이 "무료 개장에 따른 관람객을 얼마로 예상했느냐"고 묻자 별다른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주먹구구로 일을 진행했다는 방증이다. 또 미리 경찰에 질서 유지를 부탁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놀기 위한 공간에 경찰이 배치되면 보기 안 좋기 때문"이라고 둘러댔다.

롯데월드의 무료개장 행사는 최근 직원이 놀이기구를 타다 추락사하는 '안전사고'가 생기자 이를 사과한다는 취지였다. 그렇다면 롯데월드로선 안전관리 대책을 철저히 수립해야 했다. 하지만 허물을 감추려고 졸속으로 추진하다 또 다른 사고를 낳았다. 롯데월드는 손님들의 문화의식 결핍을 탓하기 전에 자신들의 기업의식부터 되짚어봐야 할 것 같다.

김호정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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