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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람] 불우이웃 집 무료로 고쳐주는 임문택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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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임문택씨(뒷줄 맨 왼쪽)와 동료 직원들이 대전시 비래동 이금의씨(뒷줄 가운데)의 비닐하우스 집 안방을 수리하고 있다. 이들은 둥글게 돼 있는 방 구조를 목재를 사용해 사각형으로 개조했다. 대전=프리랜서 이종탁

24일 대전시 대덕구 비래동 계족산 중턱에 자리잡은 비닐하우스. 20여 평 규모의 비닐하우스는 쇠파이프 10여 개를 세우고 부직포를 덮은 뒤 비닐과 검은 차광망을 씌웠다. 하우스 안은 2평 남짓한 방과 주방.헛간 등이 있다. 강순권(75).이금의(66)씨 부부가 8년째 살고 있는 이 집에 이날 반가운 손님들이 몰려 왔다. 임문택(41)대리 등 충남 금산의 KT 국제통신센터 직원 10여 명이 승합차에 합판.스티로폼 등 건축자재를 가득 싣고 온 것이다.

이들은 도착하자마자 자재를 챙겨 하우스 안으로 들어갔다. 부직포 이외에 단열 시설이 없던 벽에 스티로폼을 댄 뒤 합판을 벽에 설치했다. 누더기가 된 장판과 흐릿한 전등, 점화가 잘 안 되는 가스레인지도 새 것으로 바꿨다. 하우스 밖에 있는 부서진 화장실 문도 고쳤다.

작업은 임씨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진행됐다. 그는 "단열에 특별히 신경 써주세요. 벽모서리는 각을 이루게 해야 보기 좋습니다"고 당부했다. 임씨는 며칠 전 비닐하우스를 방문, 구조를 살핀 뒤 수리를 위해 설계를 하고 자재도 구했다.

새집처럼 변한 안방을 둘러본 집주인 이씨는 "난방과 단열이 제대로 안 돼 솜이불을 뒤집어 써도 뼛속까지 파고들던 찬바람을 이젠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임씨 등 금산 KT 국제통신센터 직원들은 금산과 대전 지역에서 '보금자리 수호천사'로 통한다. 소년.소녀가장이나 영세민이 사는 집에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달려가 무료 봉사를 해주기 때문이다.

1993년부터 지금까지 14년째 이들이 수리한 집은 금산과 대전 지역을 중심으로 700여 가구에 이른다.

이들은 ▶보일러 시공 ▶벽돌쌓기 ▶미장 ▶도배 ▶주방 싱크대 수리▶지붕 고치기 등 집수리와 관련된 것은 못하는 게 없을 정도다. 외양간을 헐어 방을 만들거나 아예 새집을 짓기도 한다.

집수리 봉사는 임씨 주도로 시작됐다. 그는 87년 대전산업대(현 한밭대)에 입학하면서 봉사 동아리인 YMCA에 가입, 고아원 등을 찾아 집수리 봉사활동을 해 왔다. 이때 집수리에 필요한 미장.도배 등 기술을 익힌 그는 입사 뒤 동료직원들에게 "집짓기 봉사를 해 보자"고 제안했다. 직원 7~8명이 동참했다. 이후 직원들은 주말과 휴일은 물론 평일에도 근무가 없는 날이면 어김없이 도시락을 싸들고 장비.자재를 챙겨 집수리에 나섰다.

집수리 경비(한 집에 100만~300만원)는 봉사활동 참여 직원들이 분담했다. 임씨는 "때론 한달치 월급을 몽땅 집고치는 데 쓴 적도 있다"고 말했다. 수리에 필요한 각종 장비 가운데 일부는 업체에서 후원받아 마련했다. 2003년부터는 금산 KT 국제통신센터 전 직원 67명이 봉사에 나섰다. 직원들은 임씨로부터 집수리 기술을 익혔다. 동료 직원 이상훈(47)씨는 "직원 대부분이 건설현장에 나가 일당 10만원 이상은 충분히 받을 만큼 실력을 갖췄다"고 말했다.

임씨는 "깨끗하고 난방이 잘 되는 집에서 살게 됐다고 기뻐하는 어린이나 노인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대전=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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