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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민섭의 변방에서

우리는 아이들을 더 불편하게 해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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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아이가 다니게 될 유치원 몇 군데에 견학을 갔다. 나도 아직 학교에 다녀야 할 것 같은데 어느새 학부모가 되었다. 나를 닮은 ‘애어른’들이 어색하게 아이와 함께 둘러앉았다. 돌아갈 때가 되자 유치원에서는 동물체험이 남았다고 했다. 동물 모형이라도 전시해 두었을지 궁금해진 나는 아이와 함께 교실로 이동했다.

교실 한가운데에는 아이들이 손바닥에 올려놓을 수 있을 만한 크기의 카멜레온과 도마뱀이, 축구공만 한 거북이가, 작은 토끼 한 마리가 있었다.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동물들을 에워쌌다. 그사이에는 아무런 칸막이가 없었다. 과연, 동물체험이라고 이름 붙여도 될 만큼 그 거리가 가까웠다. 그들은 곧 동물들을 쓰다듬거나 주무르거나 했고 몇몇은 동물들 사이로 들어갔다. 한 아이가 넘어지면서 도마뱀을 거의 깔고 앉을 뻔했지만 그의 부모는 사진 찍기에 바빴다.

변방에서 3/10

변방에서 3/10

동물을 아이들 앞에 무방비로 노출하는 것은 동물에게도 그렇지만 오히려 아이들에게 더욱 끔찍한 일이다. 적당한 거리와 명확한 경계를 둘 때 그 무엇이든 존중받아야 할 대상으로 각인된다. 함께 줄을 서는 일도 타인을 배려해야 한다는 감각을 길러준다. 아이들은 이 ‘체험’을 통해 생명에 대한 존중과 타인을 향한 배려보다는, 아마도 ‘동물을 마음대로 해도 좋다는 것’과 그 무엇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먼저 달려가야 한다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나의 아이도 그 와중에 배추 한장을 들고 거북이에게 먹이를 주겠다고 부산을 떨었다.

그러고 보면 아파트 단지의 조형물에도 아이들은 수시로 매달린다. 그들이 올라가서 놀기에도 참 좋게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나는 부모들이 “○○아, 이건 모두가 같이 눈으로만 보기로 약속된 거야”하고 말해 주기를 바란다. 별것 아닌 조형물이지만, 그런 데서부터 아이들은 ‘공공재’의 개념을 배운다.

부모는 아이를 사랑하는 만큼 그들을 조금 더 불편하게 해야 한다. 어디에서든 줄을 서게 하고 동물뿐 아니라 공유해야 할 무엇들을 만지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때 아이들은 존중과 배려라는 삶의 태도를 자연스럽게 갖게 되고 타인을 불편하지 않게 하는 사람으로 자란다. 부모는 그런 일상의 불편을 아이들과 함께 감수하는 존재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