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유죄」너무 많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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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유신독재의 미친 바람 속에서 내란예비음모로 기소되었던 박형규목사가 15년만에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가 1974년의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었을 때에는 15년 구형 하루만에 15년 징역이라는 정찰제 판결이 선고되었었다.
추상같은 유죄판결은 하룻밤 사이에 떨어지는데 그와 반대의 무죄판결에는 어찌하여 15년이라는 세월이 걸려야 하는가.
지난 25일에는 「재동포유학생간첩단」이라는 어마어마한 팻말이 붙어 10년째 보안감호 처분에 묶여있던 서준식씨가 석방되었다. 7년이라는 본래의 형기를 다 채우고도 10년 동안이나 더 수감생활을 해야 했으니 그의 처절한 억울함은 하늘에 사무쳤을 것이다.
두 사람의 경우를 놓고 이처럼 반가우면서도 서글프다는 생각이 공통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무슨 때문일까.
첫째로 그들 개인의 보상받을 길 없는 억울한 피해를 생각해서다.
박목사의 경우는 부활절예배 때의 사건 말고도 몇 번이나 감옥을 드나들었고 테러를 당했으며 심지어 폭력배에 의해서 교회당을 빼앗긴 채 경찰서 앞에서 몇 해째 노상예배를 보아야 했다. 미결 피고인이라고 해서 해외여행의 금지등 온갖 제약이 따랐는가 하면 정치목사라고 해서 매도당하기도 했다.
서씨는 서울대학교의 모국 유학생이던 스물두살때 잡혀 들어가서 이제 40대 장년이 되어 나왔다.
그의 모친은 자식의 억울함을 밝히려고 울며불며 현해탄을 넘나들다가 몇해 전에 한스러운 삶을 마쳤다. 7년의 형기도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거늘 형기를 마치면 나갈 줄 알았던 그에게 정부가 마음대로 때리는 감호처분이 2년씩 무려 다섯 번이나 되풀이되었으니 한 인간으로 감당할 수 없는 지옥을 경험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법이나 재판의 이름으로 이렇게 한 인간의 자유와 삶을 침탈할 수가 있단 말인가.
두 번째로 지적되어야 할 것은 그들처럼 억울한 멍에를 썼던 사람이 이 나라안에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이다.
박목사처럼 무죄판결을 받아야할 사건에서 무고하게 「유죄」가 되어버린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독재정권 밑에서 민주화를 외치던 각계의 인사와 청년·학생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전과자」가 되었는지는 세상이 다 알고 있다.
가해자로서 단죄받아야 할 권력이 도리어 피해자인 국민을 잡아다가 감옥으로 보낸 일도 비일비재였다.
성고문을 자행한 형사는 「정상」을 참작하여 집으로 보내놓고 그런 만행을 규탄한 사람을 감방으로 끌어갔다. 그리고 검사는 징역 4년을 구형했다. 그러자 그 고문규탄자는 법정 최후진술에서 이렇게 말했다.
『검사가 나에게 4년 구형을 한 것은 정신이상의 소치라고 볼 수밖에 없다. 고로 본 피고인은 검사에 대하여 정신병원 4개월을 구형한다.』
정말 제 정신 가지고는 차마 할 수 없는 처사들이 권력에 의해서 부지기수로 자행되었다.
비인도적 고문에 의해서 허위 자백된 사건에서도 고문자 대신 피해자가 벌을 받았다.
사회안전법에 의해서 재판도 없이 정부의 결정 하나로 기한 없는 감방생활을 하는 사람이 남아 있는 한 서씨의 석방만을 기뻐할 수가 없다. 잘못된 실정법 때문에 갇혀 있는 억울한 생명들을 우리 모두의 아픔으로 알아야 한다.
세 번째로 나는 국가권력에 의한 희생자를 양산시킨 이 나라의 체통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시국사건에서 재판이 마치 공소장의 추인 절차처럼 끝나버리지 않고 그야말로 법과 양심에 따라 제대로 이루어졌더라면 반정부=범죄라는 도식은 판결을 통해서 무너뜨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법관이 무죄를 무죄라고 선언하는 양식과 용기보다는 좌우간 유죄판결을 해놓고 보는 가책과 안일을 택한다면 사법부의 과오는 쌓이고 쌓여 이 나라의 체통은 설 곳이 없게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법의 정립과정이나 내용이 비민주적이었고 그것을 집행하는 권력의 저의가 만악의 근원이었다. 사리가 그러하다면 지금부터 할 일은 자명하다.
정치적인 탄압에 희생된 억울한 구속자들을 과감하게 풀어주고 나아가서 그들의 사회활동에 장애가 되는 법적인 제약을 해소시켜주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위해서 나섰던 사람들을 그대로 가두어 놓고서는 정부의 「민주화 의지」도 자기모순에 빠질 수 밖에 없다.
뿐만아니라 정치권력에 의해서 악용되고 남용되는 반민주악법을 대범하게 개폐하지 않으면 안된다. 독재적 지배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그냥 두고싶겠지만 과감하게 고치는 것이야말로 근본적인 해결책이며 정권에도 이로운 것이다.
마침 『국가안보를 정치적으로 이용 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는 위정자의 말이 방송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게 참말이라면 하루 바삐 그 진의를 실증으로 보여줄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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