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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 거기 어디?] 간판 대신 붙인 포스터로 인증샷 명소 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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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카페의 간판을 대신해 외벽에 여러 개씩 붙인 포스터. 파치드 서울의 상징이 됐다.

카페의 간판을 대신해 외벽에 여러 개씩 붙인 포스터. 파치드 서울의 상징이 됐다.

‘파치드 서울, 파치드 서울, 파치드 서울…’
같은 글귀를 예닐곱번씩 반복해서 쓴 허름한 포스터가 붉은 벽돌 벽에 연이어 붙어 있다. 이 벽을 배경으로 무심한 듯 시크하게 포즈를 잡고 찍은 사진들이 최근 인스타그램(이하 인스타)에 수도 없이 올라 왔다. 대개 커피 사진으로 이어진다. 이 곳은 이태원의 주택 골목에 숨어든 아지트같은 카페, ‘파치드 서울’이다.

간판 대신 붙인 포스터, 인스타 명소로 #'눈에 띄기'보다 '숨기'…역발상 아이디어 #마주보기보다 나란히 앉기, 대화 집중력 ↑ #말린 식물, 수입 액자로 인테리어 포인트

7일 현재 인스타 해시태그 #파치드서울이 3784개, #parchedseoul은 1602개다. 도합 5000개가 넘는다. 이 카페가 문을 연 시점은 불과 석 달 전. 한글과 영문 해시태그가 한 게시물에 중복해서 쓰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인스타 화제성이 엄청나다. 7일 오후 1시 오픈 시간에 맞춰 파치드 서울로 향했다.

파치드 서울로 들어가는 골목. 건너편 주택에선 공사가 한창이다. 포스터를 찾는데 집중하지 않으면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칠 가능성이 크다.

파치드 서울로 들어가는 골목. 건너편 주택에선 공사가 한창이다. 포스터를 찾는데 집중하지 않으면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칠 가능성이 크다.

“여긴데요?” 택시 기사님의 말에 황급히 차창 밖을 둘러봤지만 단번에 카페를 찾지 못했다. ‘이쪽 골목으로 들어오라’는 식의 입간판은 물론이고 가게 입구에도 이렇다 할 간판이 없다. 인스타에서 봤던 글자 포스터가 간판을 대신하고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땐 6호선 녹사평역에서 내려 5분 정도 걸어 오면 된다.

‘여기가 맞나’싶은 입구로 들어가 계단을 내려가면 자동문이 스르륵 열린다. 들어서자마자 높은 천장 아래 오픈 바 겸 카운터가 보인다. 김태순(35), 강민표(31) 두 명의 대표는 이 곳에 서서 손님들을 맞이한다. 김 대표가 커피를 만들고 강 대표가 계산을 받는다. 건축학도였던 둘은 취업준비 중에 알게 된 친구다. 각자 다른 회사에 다니다가 지난해 봄부터 파치드 서울을 준비했다고 한다.

파치드 서울의 음료가 만들어지는 오픈 바. 높은 천장 끝까지 닿은 격자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와 포근함을 준다.

파치드 서울의 음료가 만들어지는 오픈 바. 높은 천장 끝까지 닿은 격자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와 포근함을 준다.

“좋아하는 공간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좋은 음악과 커피를 제안하고 싶다는 얘기를 술 마시면서 항상 했어요. 서로 회사 생활에 싫증을 느끼면서 계획을 구체화하기 시작했죠.”

파치드 서울의 위치는 소위 말하는 ‘목 좋은’ 자리가 아니다. 오다가다 들르긴 어렵고 굳이 찾아와야 한다. 한마디로 상업적인 위치가 아니다. 두 대표는 이 불리한 점을 극대화하기로 했다. 때문에 멀리서도 손님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종이 포스터를 생각해냈다. ‘눈에 띄기’보다 ‘숨기’를 선택한 것이다. 강 대표는 “실험적이긴 하지만 그 역발상이 먹히면 독보적인 존재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 생각은 적중했다.

타이포그래피 포스터가 붙은 외벽 앞에서 찍는 사진은 파치드 서울의 대표 인증샷이다.

타이포그래피 포스터가 붙은 외벽 앞에서 찍는 사진은 파치드 서울의 대표 인증샷이다.

파치드 서울은 ‘라운지’ 형태다. 공간이 트여 있어서 카페 내부 어디에 앉든 카페 공간이 한눈에 들어온다. 벽을 따라 둘러 있는 소파 앞에는 작은 원형 테이블만 있을 뿐 마주보고 앉을 의자가 없다. 일행은 나란히 또는 대각선으로 앉아서 대화를 해야한다. 정작 마주 보고 앉는 건 생판 처음 보는 다른 손님이다. 강 대표는 “협소한 공간에서 최대한 많은 좌석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안한 형태인데 의외의 장점이 있다”며 “손님들이 서로 가까이 앉아 대화에 더 집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 팀 한 팀 그런 손님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말했다.

짙은 초록색 소파와 다홍빛 벽으로 이뤄진 라운지 공간. 대부분의 좌석이 일행이 마주 앉기보다 나란히 앉을 수 있도록 배치돼 있다. 덕분에 대화에 더 집할 수 있고 친밀감은 높아진다.

짙은 초록색 소파와 다홍빛 벽으로 이뤄진 라운지 공간. 대부분의 좌석이 일행이 마주 앉기보다 나란히 앉을 수 있도록 배치돼 있다. 덕분에 대화에 더 집할 수 있고 친밀감은 높아진다.

공간을 나눈 벽 사이엔 이처럼 통로가 있어 갑갑한 느낌을 상쇄시킨다.

공간을 나눈 벽 사이엔 이처럼 통로가 있어 갑갑한 느낌을 상쇄시킨다.

파치드 서울을 찾는 손님들은 카페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쉴 틈 없이 카메라를 들어 올린다. 카페 구석구석을 스마트폰 카메라에 담고 나서야 자리를 잡고 앉는다. 파치드서울의 상징이 된 타이포그래피 포스터 외에도 내부 인테리어가 매우 ‘인스타그래머블’ 하기 때문이다.

회색 콘크리트 벽과 짙은 초록색 소파, 다홍색 벽의 색감이 조화롭다. 부숴 놓은 듯한 콘크리트 벽이 안쪽 방과 라운지를 분리한다. 주택에서 방과 방을 분리하던 벽을 그대로 둔 것이다. 강 대표는 “카페로 사용하기 전 공간의 흔적을 어느 정도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주택에서 공간을 나눌 때 쓰였던 콘크리트 벽을 그대로 살린 인테리어. 테이블 위에는 말린 야자수 잎 오브제가 있고 그 옆에 영문 타이포그래피가 인쇄된 종이가 무심하게 놓여있다.

주택에서 공간을 나눌 때 쓰였던 콘크리트 벽을 그대로 살린 인테리어. 테이블 위에는 말린 야자수 잎 오브제가 있고 그 옆에 영문 타이포그래피가 인쇄된 종이가 무심하게 놓여있다.

뚫린 벽으로 구분된 안쪽 공간에는 거대한 나무 테이블이 있고, 그 위엔 빛바랜 노란색의 독특한 물건이 놓여있다. 휘어진 야자수 잎을 그대로 말린 오브제다. ‘메마른(파치드·parched) 서울’이라는 이름의 카페 분위기와 썩 잘 어울린다. 강 대표는 “요즘 식물을 활용한 공간이 많은데 ‘초록초록’한 인테리어는 하고 싶지 않았다”며 “우리와 어울리는 분위기의 식물을 찾다가 이 잎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벽에 세워둔 포스터들. 2017년 스위스에서 실제로 열렸던 전시의 포스터를 을지로 세운상가에서 구해왔다. 국내에선 쉽게 볼 수 없는 비율의 인쇄물이라고 한다.

벽에 세워둔 포스터들. 2017년 스위스에서 실제로 열렸던 전시의 포스터를 을지로 세운상가에서 구해왔다. 국내에선 쉽게 볼 수 없는 비율의 인쇄물이라고 한다.

한쪽 벽에 세워진 대형 액자 속에는 쨍한 주황빛 그래픽 일러스트가 담겼다. 대표들이 을지로 세운상가에서 직접 구해온 포스터다. 이 액자들이 말린 식물이 주는 칙칙함을 상쇄한다. 무심한 듯 꾸며진 인테리어 하나하나에 대표들의 섬세한 안목이 녹아있다.

사진에는 담을 수 없는 파치드 서울의 가장 큰 매력이 또 있다. 바로 음악이다. 음원이 아닌 실물 CD나 바이닐을 수시로 교체하며 재생한다. 재생 중인 앨범은 오디오 앞 콘크리트 벽에 진열해둔다. 지금 들리는 음악이 궁금하다면 선반에 놓인 앨범을 확인하면 된다. 강 대표는 “음반을 사모으는 취미가 있어 카페를 통해 공유하고 있다. 그날의 분위기·날씨·조도 등에 어울리는 음악을 선곡한다”고 말했다.

파치드 서울의 음악을 책임지는 공간. 그날의 분위기에 맞춰 대표가 선택한 음악을 틀고, 재생 중인 음악에 대한 정보를 대신해 해당 앨범 커버를 좌측 벽 선반에 올려둔다.

파치드 서울의 음악을 책임지는 공간. 그날의 분위기에 맞춰 대표가 선택한 음악을 틀고, 재생 중인 음악에 대한 정보를 대신해 해당 앨범 커버를 좌측 벽 선반에 올려둔다.

커피 맛도 특별하다. 호주 멜버른 기반의 듁스 원두를 사용한다.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선 강하게 볶아낸 원두를 사용하는데, 듁스 원두는 중간 또는 약한 불로 서서히 볶아내는 특징이 있다. 구수한 맛보다는 산미(신 맛)가 강해서 취향을 타기도 한다. 그래서 주문할 때 산미의 정도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따뜻한 음료 기준, 에스프레소 5000원, 블랙(아메리카노) 5000원, 화이트(라떼) 5500원이다.

파치드 서울의 디저트. 좌측부터 에스프레소치즈케이크, 사과치즈케이크, 까눌레.

파치드 서울의 디저트. 좌측부터 에스프레소치즈케이크, 사과치즈케이크, 까눌레.

디저트 종류는 까눌레·사과치즈케이크·에스프레소치즈케이크가 있다. 한 조각에 7000원. 구성은 요일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무화과가 들어간 파운드케이크나 쿠키가 제공되는 날도 있다.

글·사진=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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