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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균 빠지고 윤건영이 실무 … 통·통라인 대신 청·서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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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수석·보좌관회의 중 대북 특사단의 출발 소식을 들은 뒤 웃고 있다. 대북 특사단의 방북은 노무현 정부 때인 지난 2007년 8월 김만복 당시 국가정보원장의 방북 이후 11년 만이다. 왼쪽부터 임종석 비서실장, 문 대통령, 주영훈 경호처장, 문미옥 과학기술보좌관, 이상철 국가안보실 1차장. [김상선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수석·보좌관회의 중 대북 특사단의 출발 소식을 들은 뒤 웃고 있다. 대북 특사단의 방북은 노무현 정부 때인 지난 2007년 8월 김만복 당시 국가정보원장의 방북 이후 11년 만이다. 왼쪽부터 임종석 비서실장, 문 대통령, 주영훈 경호처장, 문미옥 과학기술보좌관, 이상철 국가안보실 1차장. [김상선 기자]

1972년 5월 4일 밤 12시15분. 이틀 전 박정희 대통령의 특사로 방북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현 국가정보원장)은 평양 모란봉 초대소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갑자기 유장식 북한 노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이 문을 두드렸다. 유장식은 이 부장을 급히 차에 태운 뒤 모란봉 뒤편의 오솔길로 데리고 갔다. 위협을 느낀 이 부장은 유사시 자살하기 위해 챙겨 간 청산가리를 쥐었다. 그러나 차량이 멈춘 곳에 김일성 주석이 나타나 면담이 이뤄졌다. 김일성을 면담한 지 며칠 뒤 북한 박성철 부주석이 청와대를 방문했고 이후 남북은 통일 원칙인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남과 북의 최고지도자들이 특사를 통해 얻어낸 성과였다. 2000년과 2007년의 남북 정상회담도 이처럼 남북 최고지도자들 사이의 직거래를 통해 성사됐다.

남북 협상 새 핫라인 뜨나 #윤 실장-서기실 부부장 이미 접촉 #“청·서라인, 보고 단계 적어 효율적” #노무현 정상회담 추진 ‘안골 모임’ #당시 통일부 빠지고 국정원 주도

5일부터 1박2일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사절단이 주목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한 상황이어서 문 대통령과 김정은 간의 직접소통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윤건영 청와대 상황실장이 방북한 것을 두고 청와대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서기실(비서실) 간 핫라인 구축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 실장은 문 대통령이 국회의원이던 시절 보좌관을 지낸 최측근이다. 남북관계와 관련한 문 대통령의 의중을 꿰뚫고 있고, 입이 무거워 보안이 요구되는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할 실무책임자로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 그가 이번에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김정은의 의사를 재확인하고, 실무 조율을 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익명을 원한 소식통은 “지난달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방한했을 때 동행했던 김창선 노동당 서기실 부부장과 윤 실장이 비공개로 접촉했던 것으로 안다”며 “청와대 상황실은 남북관계도 챙기고 있어 남북 정상회담이 진행될 경우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윤 실장과 김창선 부부장이 긴밀한 협의를 진행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김창선은 이날 특사단이 숙소에 도착한 직후 진행한 일정 협의에도 참석했다. 남북관계 업무를 관장했던 전직 당국자는 “2000년 이후 남북관계의 통로였던 통일부-통일전선부 채널(통통라인) 대신 청와대와 서기실(청서라인)이 형성되고 있다”며 “남북관계에서 최고지도자의 의중을 직접 교환하는 게 필요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의 특사단이 방북하면서 ‘청서라인’이 구축됐고, 향후 핫라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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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희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통통라인’을 가동할 경우 회담 일정 확정→회담 준비→회담→상부 결심→합의서 작성→이행 등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며 “패럴림픽이 끝나면 평화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이 없고,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뭔가를 끌어내기 위해 ‘청서라인’이 가동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남북 대화에서 통일부가 뒤로 물러나는 흐름은 지난달 25일 문 대통령이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을 접견했을 때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배석자 명단에서 빠지면서 가시화됐다. 조 장관은 대북 특사단에도 빠졌다. 남북관계 주무장관인 조 장관이 사절단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문 대통령이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 비서실장 시절 가동했던 ‘안골모임’의 영향이란 관측도 있다.

‘안골’은 국가정보원이 위치한 장소의 옛 지명에서 유래했다. 2007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라고 지시한 이후 대통령 비서실장(문재인), 국가안보실장(백종천), 국정원장(김만복)과 박선원 당시 안보전략비서관이 매주 목요일 모여 극비리에 정상회담을 추진했던 모임이다. 조 장관의 특사단 배제는 일반적인 남북관계와 실무는 통일부가 챙기되 핵심 현안인 남북 정상회담 등은 신(新)안골모임에서 다루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것이다.

정용수·위문희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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