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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중앙은의 독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지난 3월말 한국은행 평직원협의회는 「오늘의 현실에 대한 우리의 의견」이라는 성명서를 통해 『그 동안 중앙은행이 정치권력에 예속됨에 따라 관치·지시금융으로 금융관행이 이루어져 정경유착과 인플레이션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많이 일으켰다』고 지적하고 『한국은행은 이제 더 이상 재무부의 예하기관이 아니다』고 선언했다.
이에 대해 한국은행 고위관계자들은 이 성명서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전전긍긍해 하는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은행이 제 자리를 찾아 독립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웃사람과 아랫사람들의 이러한 생각과 행동의 차이는 오늘의 중앙은행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여실히 대변해 주고 있다.
중앙은행이 왜 중립적인 위치를 지켜야 하는가는 오늘의 한국은행이 처한 위치가 어떠한지 돌아보면 절로 대답이 나온다. 1950년5월 한국은행법이 제정될 당시만 해도 중앙은행은 엄격하게 중립성과 독립성을 보장받고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 활발하게 일고 있는 한은 중립성 문제는 38년 전 그때로 돌아가자는 것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제정당시의 한은법은 각계를 대표하는 의원들로 구성된 정책결정기관으로서 금융통화위원회를 설치, 정부로부터 독립된 위치에서 한은법에 의해 부여받은 권한을 행사하도록 했으며 한은총재는 대통령이 국무회의의 동의를 얻어 임명하도록 했다.
또 재무부장관에게 부여된 권한이라도 한은법에 의해 한은의 권한으로 규정된 사항은 한은에 이양하도록 명시함으로써 중립성을 보장했다.
그러던 것이 62년3월 군정하의 최고회의에서 김통위원회의 구성, 정책결정 및 한은의 운영에 대한 재무부장관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한은법이 1차 개정되면서 한국은행은 사실상 「무장해제」를 당하게 됐다.
무엇보다 총재를 국무회의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던 것을 재무부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토록 함으로써 한은총재가 명백히 재무부장관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었다.
금융통화위원회의 명칭도 기능성을 다분히 강조하는 금융통화운영위원회로 격하되었으며 김통운위의 의결사항에 대한 재무부장관의 「재의 요구권」을 신설하는 등 김통위원회의 독립성이 크게 제한되었다.
이와 함께 재무부장관에게 한은 업무 감독권을 주었으며 한은의 내부감사기관인 감사임명권자를 감통위에서 재무부장관으로 바꾸었다. 지금은 아예 재무부장관이 김통운위의장을 경하고 있다.
이와 같은 방향으로 한은법은 그 동안 5차례나 손질을 당하면서 중앙은행의 권위와 능력을 상실했다.
한은법을 개정할 때마다 정부는 「경제개발의 효율적 추진을 위해서는 정부와 중앙은행은 협조적 관계가 중요하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못함으로써 오늘날 관치·지시금융은 너무나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으며 그 병폐는 분배구조의 왜곡·산업간 불균형 성장·부실기업 등 경제전반에 걸쳐 광범하게 나타나고 있다.
경제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개정된 한은법이 오히려 국가경제 운용을 경직화시키고 스스로 효율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고만 것이다.
바로 이점에서 중앙은행의 중립성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각계에서 일고 있는 이런 움직임은 김통위의장직을 현행 재무부장관에서 한은총재로 바꾸는 동시에 김통위의 권한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두 가지 내용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것이 선행돼야만 한은은 통화신용정책과 외환정책을 독자적으로 수립할 수 있으며 이는 중앙은행의 고유권한이라는 주장이다.
외국의 경우에서도 중앙은행의 정부예속 폐해는 여러 번 입증되었으며 현재 선진국 대부분의 경우는 중앙은행의 중립성이 충분히 보장되고 있다.
나치정부하에서의 독일중앙은행총재는 재무부장관이 겸함으로써 천문학적인 인플레를 낳았다.
정권유지의 필요성에 맞춰 돈을 마구 찍어냈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 독일경제를 혼란의 늪으로 몰아넣었으며 전후 독일정부는 이 뼈아픈 교훈을 살려 현법개정 과정에서 중앙은행을 헌법기관으로 명시, 행정부의 간섭을 제도적으로 배제했다. 스위스도 마찬가지 경우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도 정부로부터의 중립성이 충분히 보장되고 있으며 우리와 경제적 환경이 비슷한 대만도 중앙은행을 총통직속기관으로 함으로써 행정원의 입김을 차단시키고있다.
이밖에 일본·영국 등은 법적인 보장은 다소 미약하지만 실질적으로 정부가 중앙은행에 대한 지시권을 행사하지 않으며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존중해 주고있다.
한은의 중립성 내지는 독립성 요구에 대해 재무부 측은 원칙적으로는 찬성하지만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생각인 것 같다.
재무부가 내놓은 개편방안에 중앙은행의 독립문제가 본격 거론되지 않고 있는 것이 그것을 말해준다. <심상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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