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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재야 반미감정 심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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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혈맹」 또는 「영원한 우방」으로만 인식 되어왔던 일반국민들의 대미감정과는 달리 일부 운동권학생 및 진보적 성향을 띤 재야인사들 사이에서 반미감정이 날로 심화되고 있다.
반미의식은 70년대초부터 급진인사와 일부 학생들 사이에 단편적으로 존재해 왔으나 민주화세력과 운동권학생들의 대미태도에 중요한 변화를 주었던 「광주사태」를 거친 직후인 제5공화국시대부터는 폭력을 동반한 행동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경찰 및 대학관계자들에 따르면 운동권 및 일부재야세력은 이제 미국을 우리의 동맹우방이나 동반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한국을 지배하고 수탈하는 「제국주의세력」으로 규정, 한국의「진정한 민주화」와 「민족자주」「민족통일」을 위해서는 이땅에서 「미제축출」이 선행돼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관련, 최근 대학가운동권학생들의 집회나 시위에서는 「반전반핵 양키고홈」「파쇼타도 미제축출」등 극렬하고 충격적인 반미구호와 이같은 내용을 담은 유인물들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운동권학생들의 반미의식과 반미투쟁은 지난 20일 서울지역 총학생회연합산하 「민중생존권쟁취와 광주학살주범 미-청와대독재처단을 위한 학생투쟁연합」소속 「애국청년결사대」 대학생 7명이 주한미대사관에 사제폭발물을 투척한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날로 과격 양상을 띠고 있다.
◇반미투쟁의식 확산=지난80년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운동권학생들의 반미투쟁은 80년12월에 발생했던 광주미문화원방화사건을 기폭제로 해 82년3월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등으로 이어졌다.
이 사건당시 배포된 유인물에는 「미국세력의 완전한 배제를 위한 반미투쟁을 전개하자」는 내용이 적혀 있었는데 이를 계기로 지난 70년대이후 지하에서 서서히 확산되기 시작한 운동권학생들의 대미저항의식이 가시권으로 떠올랐다.
이러한 반미투쟁의 연속선상에 85년5월23일 전국학생총연합 산하조직인 「삼민투」(민족·민중·민주쟁취투쟁위원회)소속 5개 대학생 73명이 서울미문화원을 기습점거하기에 이르렀다.
학생들은 문화원 2층도서실을 점거한 채▲광주민중시위의 무력진압을 지원한 책임을 지고 미국행정부는 공개사과할것▲미국은 현 정권에 대한지원을 즉각 중단할것▲미국국민은 한미관계의 올바른 정립을 위해 진지하게 노력할 것등을 주장,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한국민의 미국에 대한 인식이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점을 본격적으로 제기했다.
학생들은 72시간에 걸쳐 농성을 벌이는 동안 한국인의 대미인식이 결코 「우호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백히 밝혔으며 이 사건의 행동동기가 「광주사태에 대한 미국의 책임응징」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대학생의 미국인식=85년 서울대생들을 상대로한 「미국에 대한 인식조사」결과는 우리대학생들의 80%가량이 한미관계 불균형에 불만을 갖고 있음을 명백히 드러내 충격을 주었다.
이 조사에서 현재의 한미관계에 대해 「대단히 불만」이라고 밝힌 학생이 전체의 47.2%를 차지했으며 「다소 불만」이 33.7%로 불만쪽이 압도적인 반면 「매우 좋다」는 0.6%, 「다소 만족」은 4.4%로 나타나 학생층에서의 반미의식이 팽배해 있음을 드러냈다.
또 과거 40년간의 한미정치관계에 대한 물음에는 「거의 미국이익 우선이었다」는 견해가 55.0%, 「대체로 미국이익 우선」은 40.0%였고 「대체로 한국이익 우선이었다」는 견해는 1.7%에 불과했다.
한미 경제·문화관계에 대해서는 「미국이익 우선이다」는 견해가 91.2%를 차지했고, 「미국이 한국문화를 거의 지배하고 있다」는 견해가 56.7%나 돼 적어도 대학생들에 관한 한 미국은 우리를 지원해주는 존재가 아니라 철저히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해온 존재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운동권학생들의 반미의식은 주로 「광주사태」에 있어서의 미국의 역할과 책임 및 농축산물·양담배등에 대한 고압적인 수입개방압력등 미국의 정책에 대한 비판과 항의로부터 비롯됐다는 것이 대학관계자들의 지적이다.
학생들은 수입개방확대, 외채누적, 농민들의 생활고와 연결되는 저곡가문제나 소값파동등이 미국의 한국에 대한 경제적지배와 결코 무관한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하고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반미투쟁의식은 86년4월 「양키의 용병교육 전방입소 결사반대」등을 외치며 입소거부시위를 벌이다 분신자살한 서울대생 김세진·이재호군 사건으로 극도에 달했다.
「광주학살에 대한 책임」「군부독재에 대한 지원」「수입개방압력등 경제적 침탈」등을 주요 이슈로 삼아 반미저항운동을 벌여온 운동권학생들 사이에는 『조국의 자주화·민주화·평화통일을 위해▲핵무기철수·평화협정체결▲민중적 통일운동보장▲민족대단결을 위한 공동올림픽개최등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보편적인 주제가 되고 있다.
운동권학생들은 특히 통일문제와 관련, 미군의 한국주둔이 한반도의 분단을 고착화시키고 있다는 인식아래 미국을 한국의 민주화와 민족통일을 가로막는 「적대적인 존재」로 보고있다.
이같은 인식아래 주한미대사관에 대한 사제폭발물투척사건으로까지 이어진 대학가 운동권학생들의 반미투쟁은 폭력을 동반한 극단적인 행동을 서슴지않는 형태로 보다 가열될 우려가 높다는 것이 관계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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