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정책 추진에 돌파구 열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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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일당 독재의 공산국가에서 당 최고지도자가 생존해 있으면서 후계자가 선출되는 극히 이례작인 사태가 발생했다.
공산권에 몰아닥친 개혁과 민주화의 돌풍이 그들의 정치적 존재양식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 셈이다.
1956년 반소데모가 소련군의 탱크로 진압된 후 집권한 야노스·카다르 헝가리 공산당서기장은 22일 당 대회에서 신설된 명예직인 당의장으로 물러서고 카서리·그로스 수상에게 서기장을 물려주었다.
카다르는 그동안 개혁파에게는 보수주의자로 보수파에게는 자신들의 이익옹호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경원시 돼왔다.
따라서 헝가리에서는 이번의 임시 당 대회를 통해 그의 후계자가 결정되리라는 것이 공공연히 논의돼왔다.
그리고 이번 당 대회를 통해 카다르는 동구권에서는 전례없는 질문공세를 받았고 사회주의적 번영에 대한 신 방법론의 제시에 실패, 끝내 자리를 물려주게 됐다.
카다르는 그러나 사임이 발표된 직후 9백 여명의 대의원들에게 기립 박수를 받아 그가 아직도 국민들에게 존경과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냈다.
사실 그는 56년 헝가리봉기진압에서 수행한 역할로 국민의 증오를 받았으나 그후 동구권에서는 가장 선도적으로 탄력있는 개혁정책을 솜씨있게 수행, 헝가리를 동구에서는 가장 소비상품이 풍부한 부국으로 만듬에 따라 국민의 인기를 누려왔다.
그는 또한 정치적 민주화에도 융통성을 발휘, 70년대에는 공개적인 정치토론을 허용함으로써 더욱 신망을 얻어봤다.
그러나 80년대에 들어와 헝가리식 개혁이 난관에 봉착하여 1백85억 달러로 동구최대의 외채국이 됐고 아울러 연15%이상의 인플레로 생활수준도 떨어지기 시작하자 새로운 경제개혁의 필요성과 함께 그의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번의 서기장 교체는 헝가리의 경제개혁에 대한 정책적 돌파구를 상징하는 것이며 동시에 최근 다당제를 요구하며 자유주도 조직망을 결성한 반체제 정치·종교·청년·환경그룹에서 보여지듯 국민의 정치적 자율확대 요구에 대한 부응책의 기반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이번 대회에서 60년대 개혁정책의 선구자였던 경제학자 「레스조·니에르소」(65)가 72년 실각이후 정치국원으로 복귀했고 경제위기의 타파를 위해서는 경제조치에 수반된 정치적 변화를 수반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므르·포즈스가이가 애국인민전선의 지도자로 부상한 점이 주목된다
그리고 1백8명의 신규중앙위원은 구위원 1백6명중 3분의l이 교체된 것이며 정치국원 11명 중 계속 잔류한 사람은 야노스·베레츠와 그로스 뿐이다. 「카롤리·그로스」신임 서기장은 57세로 고르바초프와 유사한 스타일이며 정력적인 공개활동과 반갑지 않은 진실에 기꺼이 직면하려는 실용주의자로서 국민의 신망이 높은 개혁정책의 지지자다.
그러나 그는 인기에 영합하려는 자세만은 아니어서 지난해 6월 수상에 임명된 후 긴축정책과 가격통제철폐, 이윤이 남지 않은 국영기업의 철폐 등 인기없는 정책을 추진해온 소신파이기도 하다.
보다 과감한 개혁론자인 「그로스」의 출현은 소련의 고르바초프로서도 마다할 까닭은 없을 것이다.
고령자가 지배해왔던 헝가리에 50대의 그로스가 출현함으로써 초대 지도자는 불가리아와 동독만이 남게됐고 동구의 전반적 지도자교체의 마무리는 시간문제로 남은 인상이다.
또한 『개혁의 성공을 위해서는 이념적 선입관을 버려야 한다』는 신임 그로스 서기장의 말처럼 서기장 교체의 바람은 동구식 실용주의의 개화로 이어질 것으로 짐작된다.

<이재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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