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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과 인력·금융·지식·정책 따로 놀아, 4대 미스매치 없애야 혁신 생태계 활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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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3호 10면

전문가 진단

대학과 연구소는 제품과 서비스의 원천인 지식을 만들어낸다. 기업가는 지식을 활용해 혁신을 이뤄내고 이를 시장에 선보인다. 벤처캐피털은 자본 시장에서 조달한 자본을 유망 벤처기업에 투자하고 지분을 확보한다. 회수 시장은 벤처기업이나 벤처캐피털에 축적된 무형의 가치를 자본이라는 형태로 전환시킨다. 창업의 혁신 생태계는 이렇게 작동한다.하지만 현실에서는 네 가지 큰 미스매치(부정합)가 이러한 혁신의 선순환을 저해한다. 우선 인력과 시장 사이의 부정합이다. 특히 산학 관계에서 두드러진다. 기업은 도전 정신에 문제해결 능력까지 갖춘 인재를 필요로 하는데 대학이 배출하는 인력은 그렇지 못하다는 얘기다. 대학의 변신이 핵심이지만 공과대학의 역할만 기대해서는 큰 성공을 거둘 수 없다. 사회와 기업이 원하는 혁신 인재를 배출해야 한다는 전제 아래 대학의 교육과정과 운영 방식을 개혁하는 방법, 기업과 연계해 대학 내 창업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들 수 있다. 사업화를 염두에 둔 연구 능력뿐 아니라 사업화 담당자의 역량도 함께 길러야 한다.

산업 판도 바꿀 게임 체인저 #기술 기반 창업서 태동할 것

 금융과 시장 사이의 부정합도 있다. 혁신의 다양한 요소들을 연결해 주는 가치 사슬의 핵심이 바로 금융이다. 금융-시장 부정합의 중심에는 신뢰가 자리한다. 신뢰가 없는 사회에서는 금융정책이 실패할 수밖에 없으며, 모럴 해저드를 막기 위한 규제만 늘어간다. 창업과 벤처 지원을 위한 정책 자금이 원활하게 흐르도록 해야 하며 부처별로 다양하게 분산돼 있는 창업지원사업도 재정비해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인수합병(M&A)에 대한 규제 역시 국내 토종 자본의 발목을 잡아왔던 대표적인 부정합 사례다. 기업이 자율적으로 한계 사업을 정리하고 사업 구조를 재편해 핵심 역량에 집중할 때 경제의 역동성을 되살릴 수 있는 것이다.

 지식과 시장 사이의 부정합 또는 엇박자도 문제다. 우리 정부의 연구개발 투자는 세계적 수준이지만 기술이전에 따른 사업화 비율이 10%를 밑돌며, 기술무역수지 등의 지표도 선진국에 비하면 매우 낮다. 문제는 연구 성과들이 소비자로부터 외면당하거나 시장 창출을 하지 못한 채 휴면특허의 형태로 잠자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무역수지와 사업화 지수 등을 높이기 위해 기술이전과 사업화 조직을 생산적으로 통합하고 ‘연구개발 서비스업’을 육성하는 방안도 고려해봄 직하다.

 마지막으로 정책과 시장 사이의 부정합인데, 시장에서 원하는 정책이 적시에 원하는 방향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과도한 규제나 탁상행정이 원인이기에 규제 정비와 개혁이 해법이다. 규제가 많으면 개인과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억압을 받는 것은 분명하나, 규제에는 명분과 이유 또한 있게 마련이다. 규제를 이해집단과 정치권, 관료 사이의 이해관계로만 보아서는 현명한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

 과학기술 발전의 역사는 바로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끊임없는 도전과 실패의 역사다. 도전과 자율에 바탕한 연구개발 혁신 생태계, 미래 선점형 전략, 사회적 가치 창출과 지속 가능한 포용적 성장을 목표로 하는 신뢰 중심 가치관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러한 시대정신과 새로운 질서를 바탕으로 과학기술 혁신정책 분야에서 산업의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가 기술 기반 창업에서 태동되리라는 기대감을 가져보자.

임기철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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