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훈련 수용못해 vs 연기 불가···北·美 사이에 낀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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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5일 강원도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 겨울 올림픽 폐회식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선전부장이 악수하고 있다. 문 대통령 왼쪽은 이방카 트럼프 보좌관, 오른쪽은 류옌둥 중국 국무원 부총리. [연합뉴스]

2월25일 강원도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 겨울 올림픽 폐회식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선전부장이 악수하고 있다. 문 대통령 왼쪽은 이방카 트럼프 보좌관, 오른쪽은 류옌둥 중국 국무원 부총리. [연합뉴스]

연합훈련 ‘연기 불가’ 美, ‘수용 불가’ 北...사이에 낀 한국

문재인 대통령의 ‘평창 구상’은 북한의 평창 겨울 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이를 북·미 대화로 연결하는 게 골자였다. 하지만 실제 평창 올림픽은 북·미 간에 입장차만 더욱 극명하게 드러내는 결과로 이어졌다. 중재자를 자처했던 정부는 미국과 북한 사이에 끼어 뾰족한 수를 내지 못하고 있다.

평창 겨울 패럴림픽(3월9~18일) 이후로 연기된 한·미 연합군사훈련에 대한 북·미의 입장은 평행선에 가깝다. 미국은 “추가적인 연합훈련 연기 가능성은 없다”(2월28일 마크 내퍼 주한 미 대사대리)고 잘라 말했다. 내퍼 대사대리는 “우리 동맹이 강한 억지력 유지를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할 실질적 필요성이 있고, 연합훈련을 통해서만 이를 달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합훈련과 동맹 관계를 등치시키는 분위기다.

북한은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혔다. 평창올림픽 폐회식 참석차 방한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일행은 한국 정부가 “연합훈련은 예정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하자 “군 등 내부의 반발이 있을 수 있어 수용할 수 없다”는 취지로 답했다. 폐회식이 열린 지난달 25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미국이 남조선 괴뢰들과 합동 군사 연습을 재개하기만 하면 그에 단호히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대화를 시작하기 위한 전제 조건도 북·미 간 접점이 없다.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은 “대화 조건은 비핵화”라는 점이 확고하다. 내퍼 대사대리는 “목표가 비핵화라고 명확히 표명되지 않은 대화는 원치 않는다”고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이 ‘이 대화의 목표이자 결과는 핵 폐기’라고 점을 사전에 시인하고 사실상 무릎을 꿇고 들어오라는 게 미국 입장”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북한은 대화의 전제가 ‘핵보유국 지위 인정’이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1일 “핵보유국 조선과의 무력 충돌을 피하려 든다면 트럼프는 조선과 대화할 방법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대화의)조건은 미국이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남북 접촉을 통해 물밑에서 파악한 입장도 동일했다. 이번 방한에서 김영철은 “미국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수차례 밝혔지만, 실상은 “핵보유국 지위를 갖고 미국과 대화하겠다”는 얘기였다고 한다. 북한이 말하는 북·미 대화는 비핵화 대화가 아닌 핵군축 대화인 셈이다. 미국과 북한이 말하는 ‘대화’는 서로 이처럼 완전히 다른 의미다.

사정이 이러니 양 측을 설득해 ‘중매’하겠다고 나선 정부는 난감하기만 하다. 북한도, 미국도 한국의 사정을 봐줄 생각이 없다. 문 대통령이 직접 “미국은 대화의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고, 북한도 비핵화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촉구했지만 어느 쪽에서도 메아리가 들리지 않는다.

정부는 북·미 대화의 조기 성사를 추진하고 있지만, 양 측의 입장 차가 큰 만큼 서둘기보다는 차분히 주변 분위기 조성에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화의 실마리를 찾기 위한 미국과의 의견 조율이 핵심이다.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재 북·미 간에 근본적인 입장 차가 있는데다 협상력 확보를 위한 기싸움 측면도 있어 어느 쪽도 양보가 힘들다. 정부는 중간에서 성급한 판단을 보류하고, 올 하반기까지 길고 크게 보면서 한·미 간 협의와 남북 접촉 등을 통해 대화 계기를 만들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지혜·하준호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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