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송영무 딜레마'…한국당은 동정, 민주당은 전전긍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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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28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의자에 앉기 전 가방을 놓고 있다. 이날 민주당 의원들은 불참했다. 임현동 기자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28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의자에 앉기 전 가방을 놓고 있다. 이날 민주당 의원들은 불참했다. 임현동 기자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문재인 정부의 ‘X맨’일까. 송 장관의 이른바 ‘소신 발언’이 여권에는 악재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여의도 정가에 떠도는 얘기다.

야당인 자유한국당 내에선 딜레마 상황에 놓인 듯한 송 장관에 공감을 표하거나 동정하는 발언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한국당 소속 김학용 국회 국방위원장은 1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송 장관이 전날 국회 긴급현안질의 때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방한 논란에 대해 ‘군 입장에서는 불쾌한 사항’이라고 답변하지 않았느냐”며 “국방부 장관으로서 소신있게 직무에 임할 수 없는 현실에 답답한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홍지만 한국당 대변인도 이날 ‘송영무의 딜레마’라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적을 적이라 못하고, 살인마도 살인마라 못하는 송 장관의 입장이 안쓰럽다”며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을 까먹는 사람이라고 청와대와 여당의 몰매를 맞으면서 송 장관이 주눅이 든 것 같다”고 말했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 긴급현안질의에서 김학용 자유한국당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 긴급현안질의에서 김학용 자유한국당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송 장관이 전날 국회 긴급현안질의와 각종 상임위 답변에서 “우리의 주적이 누구냐”는 질문에 ‘북한’이라고 답하지 못하고, “천안함 폭침을 지시한 게 누구냐”는 질문에도 ‘김영철’이라고 답하지 못한 상황을 가리킨 얘기다.

지난달 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한 송 장관은 5ㆍ18 진상규명특별법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가 더불어민주당과 민주평화당 의원들로부터 질책을 받았다. 김진태 한국당 의원이 “이 법에 따르면 진상규명위원회가 수사 담당 검사에게 영장을 청구해달라고 요청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지적하자 송 장관은 “실제 조사나 자료문건 요구에 무리가 있다는 것을 보고받고 있었다. 헌법에 위배되어서는 안 된다”고 동조했다. 민주당과 민평당 의원들이 5ㆍ18특별법 통과에 반대하는 거냐고 추궁하자 송 장관이 “헌법 위배 소지가 있다면 빨리 조정해서 통과시켜달라는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이 식지 않고 있다.

또 같은 날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한 송 장관은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가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4월 첫 주에 재개될 것으로 안다고 말한 데 대해 “그 사람은 그런 것을 결정하는 위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여당인 민주당은 이같은 송 장관의 언행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국회 국방위 관계자는 “국방위 전체회의 시작 전에 이철희 민주당 간사가 송 장관을 따로 불러 20분 동안 얘기하더라”며 “민주당은 불참하기로 한 상황에서 이런 질문엔 이렇게 답하고, 어떤 말은 하면 안되는지 가이드라인을 준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송 장관은 애초부터 김영철 방한 관련 국방위 현안질의에 출석하려고 했지만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막은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송 장관이 문재인 정부의 국정 철학과 다소 어울리지 않는 듯한 모습이 노출되면서 경질 가능성을 전망하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뚜렷한 대과 없이 문 대통령과 10년 가까운 인연을 지닌 송 장관을 내치기는 어려울 거란 관측도 적지 않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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