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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공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한 시절 우리사회엔 두개의 도깨비 방망이가 있었다. 그 이름도 고상해 하나는「안보차원」이고 다른 하나는「사회정화 차원」이었다. 이「차원」이라는 방망이만 들이대면 안 되는 일없고 무서운 것이 없었다. 아래위로 휘뚜루 마뚜루 휘두르면 누구도 꼼짝을 못했다. 권위주의란 다름 아닌「차원주의」이기도 했다.
어마어마한「안보차원」은 접어두고「사회정화 차원」으로 다스려진 대표적인 예는 과외단속이다. 어느 집에서 가정교사가 과외를 했다하면 득달같이 「사회정화 차원」의 도깨비 방망이가 뒤쫓아갔다. 검사님께 아뢰면 구속영장이 제창 떨어지고 당사자의 아버지는 세무사찰을 당해 파죽음이 되고 공직에 있는 아버지는 단칼에 목이 달아났다. 패가망신이다.
이 도깨비 방망이는 우리 사회의 미풍양속까지도 바꾸어 놓았다. 옆집에 대학생 차림의 청년이 자주 드나들면 파출소나 사회정화 위원회에 신고를 한다. 신고를 받은 폭에선 때로는 청소원이나 엿장수를 가장해 그 집 앞에 잠복했다가 범인을 잡아내는 눈부신 전과를 올려 모범공무원이 될 법도 하다.
「사회정화 차원」의 과외 단속 앞에는 이웃도, 친척도, 스승도 없었다. 제5공화국은 이것을 중요한 치적의 하나로 삼아 책자까지 만들어 집집마다 돌리기도 했다.
자, 그럼 힘은 없지만「교육차원」에선 어떻게 되었나. 세상에 공부 잘 시키는 것이 사회를 망치는 노릇이고, 멀쩡한 사업 망쳐놓는 일이며 공직자가 쫓겨나야 할 일인가. 그처럼 반 교육적이고 반사회적인 일이며, 그것도 모자라 이웃을 밀고해야 하는 반민족적인 일이란 말인가. 그나마 처벌이 공평했다면 공연히 남의 행운에 배가 아프지는 않았을 것이다.
『법은 거미줄과 같아 작은 파리새끼들은 잡아도, 말벌이나 나나니벌은 찢고 빠져나가게 한다.』 「J·스위프프」라는 영국 시인이 한 말이지만 꼭 그 지경을 만들고 말았다.
바로 그「사회 정화」의 주요 사업이었던 과외문제가 사회정화위에서 문교부로 옮겨졌다.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넘겨진 것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문교부는 그렇게 경우없는 짓은 안 할 것이다. 비록 단속권은 경찰 나리들에게 주어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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