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철(재미 변호사)「가진자」자부심 버린 미 무역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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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자유와 평등은 인류의 가장 고귀한 두가지 이상이긴 하지만 그 둘은 다소 상호 배타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인류가 처음 공동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누구도 간섭을 싫어 했을테니 자유를 최고이상으로 삼았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능력이 균등하지 않기때문에 세월이 지나면서 불평등이 생기고 그런 다음엔 평등에 대한 외침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안위적으로 평등을 얻기 위해서는 자유를 억제할 수수밖에 없고 자유를 억제 하면 자주적 창의와 발전이 없으니 평등이 너무 심해지면 다시 평등을 희생하여 자유를 외치게 되는것 같다. 인간의 역사란 가진자가 부르짖는 자유와 못가진자가 부르짖는 평등이라는 두가치의 교대적 추구의 과정이 아닌가 보여진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경제적 자유보다는 평등에 대한 외침이 점차 커지고 있는 것같다. 이러한 평등을 향한 외침에 대해 가진자들이 자꾸만 자유를 외친다면 못가진자의 외침이 탄식이 되고 분노로 발전할 수도있을 것이다. 외침이 탄식과 분노로 발전하기전에 다소의 자유가 희생되더라도 평등을 추구해야 한다는데 대해서는 어느정도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가고 있는것 같기도 하다.
이러한 평등에 대한 외침은 다소 역설적이긴 하지만 지금 국제사회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세계 최강의 미국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가진자로서 자유를 외치고 또 실행하는 국가들의선봉장이었다. 다른 나라들이 아무리 보호무역 장벽을 두텁게 쌓았어도 미국만은 의연히 가진자로서 자유무역 제도를 외치고 제도를 고수하는 나라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유지해 왔었다.
이번에 과반수를 훨씬 넘는 표수로 미국의회를 통과한 1천페이지에 달하는 신무역법안은 무역적자에 견디다 못한 미국이 자유를 외치는 가진자로서의 긍지를 내동댕이 치고 평등을 외치는 못가진자로서의 입장을 취하는 역사적인 전환이 아닌가 느껴진다.
신무역법안에 대해 미국의 무역정책방향이 자유스런 무역(free trade)에서 공정한 무역(fair trade)으로의 역사적 전환을 이루는 것이라고 미국 언론들이 논평하면서 이것이 자존심을 상해가면서 달러화를 형편없이 절하시켰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늘어나는 무역적자에 당면하여 이제 미국이 더 이상 적어도 대외교역에 있어서는 자유를 부르짖을 형편이 못된다는 것에 대해 미국의회가 공감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는것은 특기할만한 일이다.
지금까지는 미국은 다른 나라에 시장개방을 요구했으면 했지 자기의 시장을 막는 일은 안했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자기의 시장도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막겠다는 의지를 표시한 것이다. 예를들어 지금까지는 미국의 해당 산업이 수입상품에 의해서 몰락되었다고 무역대표부 (USTR)가 단정을 내리고 수입품에 대해 관세를 매기자고 건의해도 대통령은 그것을 깡그리 묵살할수 있었다.
실제 몇년전 한국산 신발에 관련한 USTR의 비슷한 요구를 대통령이 무시한 경우도 있었다. 이제 신법안에서는 대통령은 정말 특별한 사유가 없는한 USTR가 하자는 대로해야 하계 되어있다. 장관이 내려는 판정을 대통령이 거부 못하도록 하는 파격적인 조항이다. 뿐만아니라 무역장벽을 심하게 쌓는 상대국에 대해서는 무역장벽의 대상이 되는 상품뿐 아니라 무차별로 그나라의 모든 상품에 대해서 마구 보복조치를 취할수 있도록 만든것도 그예다.
이러한 조치들은 산업구조가 취약한 2등 국가들이 오랫동안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미국만은 적어도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까마귀 노는곳에 백로야 가지마라』고 의연하게 자유무역을 외치던 미국이 이제는 나도 까마귀가 되겠다고 나선 이법안을 자부심 강한 「레이건」대통령이 받아들일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공장폐쇄사전 통지조항에 대한 반대를 구실로 거부권을 행사한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 법안이 법률화 되느냐 못되느냐 하는것 보다는 미국인들을 대표하는 의회가 자유를 희생해서라도 평등을 추구하겠다는 굴욕적인 결정을 내린 점일 것이다. 우리 국내의 평등에 대한 외침의 논리의 당위성과 미국 외침의 논리의 당위성간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미국은 세계 제일의 부자 나라 아닌가.
그러나 어느 집단이나 국민이 가진자의 자부심을 버리고 평등을 외치게 될 때는 그 사연이 어떻게 되었든 자기나름대로의 논리와 절박성이 있는것이 아닐까. 미국민들이 실제소유하고 있는 부의 다과에 관계없이 이제 일본·한국·대만등이 도리어 가진자로서 보여지고 자기들의 마음이 가난하고 앞으로 더 가난하게 될것이라는 위협을 느낀다면 그것이 그들에게는 그 나름대로 평등을 외칠만한 충분한 논리가 될수도 있지 않을까.
그들의 논리를 바로 잡아줄만한 우리의 논리는 무엇일까. 그들의 평등에 대한 외침이 탄식과 분노로 발전되기전에 우리가 할수 있는 슬기로운 일이 무엇인가를 곰곰 생각하고 대책을 세워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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