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년 전엔 진흙으로 '파마'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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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기원전 3000년께 이집트인들은 나일강 유역의 진흙을 머리카락에 바른 뒤 나무봉에 감아 태양에 말렸다고 한다. 그렇게 얼마 동안 있다 머리를 감으면 파마머리가 되기 때문이다. 진흙이 알칼리성이기 때문에 머리카락의 화학적 구조를 바꿔주는 효과가 있는 것을 이용한 것이다. 미용계에서는 이를 파마의 시초로 보고 있다.

현대적인 파마 기술이 발명된 지 올해가 100주년이다. 이집트인의 진흙 파마에서 현대적인 파마로 기술이 발전하기까지 몇천 년이 걸렸지만 첨단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선보이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100년 전 개발된 파마의 원리는 지금도 여전히 그대로다.

한국화학연구원 이동구 박사는 "파마의 원리는 100년 동안 전혀 변하지 않고 있으며, 단지 모근에 영양을 공급한다든지 하는 기능만 추가되고 있다"며 "머리에 무스 바르듯 한번에, 짧은 시간에 파마를 할 수 있는 신기술 개발 쪽으로 연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박사팀은 2004년 획기적인 성능의 파마약을 개발했었다.

파마의 원리=100년 동안 변하지 않는 파마의 원리는 무엇일까. 머리카락의 화학적 구조를 화학약품으로 바꿔주는 것이 그 비법이다. 머리카락은 일종의 단백질이며, 그 복원력이 탁월하다. 머리카락 단백질은 원소 황(S)과 황이 강하게 결합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머리카락을 물결 형태 등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 머리카락의 중요 골격인 황끼리의 결합을 무너뜨려야 한다. 그 첫 과정이 파마를 할 때 처음 발라 주는 약이다. 화학적으로는 환원제, 파마약으로는 제1제라고 한다.

환원제가 황에 수소(H)를 달라붙게 함으로써 황끼리의 연결 고리를 끊어버린다. 그러면 머리카락은 육안으로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부풀어 오르고 부드러워진다.

머리카락의 화학적 기본 골격이 바뀐 상태가 되는 것이다. 딱딱하게 굳은 찰흙 조각에 물을 부어 새로운 형상을 빚을 수 있는 황토 반죽으로 만들어 놓은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그렇게 부드러워진 머리카락을 플라스틱 봉에 감은 뒤 고무줄로 묶어 놓는다. 곱슬머리를 만들기 위해서다. 이때 과산화수소 등 산화제(제2제)라는 것을 발라 황끼리의 결합을 끊어 놓는 역할을 하고 있는 수소를 제거해 황끼리 다시 결합하게 한다. 머리카락의 원래 골격을 복원하는 것이다. 물론 곱슬머리가 된 상태에서 골격이 복원된다는 점이 다르다. 찰흙 반죽으로 새로운 조각을 만든 뒤 말려 굳게 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새로운 원리 개발 가능할까=현재까지 파마에는 기본적으로 환원제와 산화제 두 가지를 사용한다. 두피나 모발 보호제, 모발 영양제 등은 별도의 기능이다. 파마에 걸리는 시간도 20~60분 걸린다. 두발 과학자들은 지금까지의 방법과는 완전히 다른 것을 개발하거나 어떤 하나의 약품으로 몇 분 만에 파마를 끝낼 수 있는 파마약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예를 들면 둥그런 브러시로 머리를 둘둘 감으면서 스프레이를 뿌리면 영구적인 곱슬머리가 만들어진다든가 하는 약품을 개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그런 획기적인 파마약의 개발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이 박사팀의 경우 나노 기술을 이용해 플라스틱 봉과 고무줄을 사용하지 않고 20분 만에 파마를 끝낼 수 있는 새로운 파마약을 개발한 것이 세계적으로 가장 앞선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파마란=영구적 곱슬머리를 말하는 영어 Permanent Wave(퍼머넌트 웨이브)가 변한 말이다. 1906년경 영국의 유명한 미용사였던 찰스 네슬러가 화학약품인 붕사에 적신 머리카락을 봉에 감아 열을 가하면 영구적인 곱슬이 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것이 현대 파마의 시초다. 1941년 미국의 맥도너프가 열을 가하지 않아도 되는 화학약품을 개발함으로써 이른바 냉(冷) 파마 시대를 열었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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