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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부양 외면한 부모도 자녀사망 보험금 받을 수 있어”

중앙일보

입력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헌법재판소 외부 전경. [중앙포토]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헌법재판소 외부 전경. [중앙포토]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더라도, 자녀 사망 시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왔다. 양육 과정에 폭행 등의 중대한 범법행위가 없었다면 상속 지분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27일 헌법재판소는 지난 22일 상속 결격사유를 규정한 민법 1004조가 재산권을 침해한다면 A씨가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민법 1004조는 상속 결격자를 규정한 법 조항이다. 고의로 상속 우선순위에 있는 자를 살해하거나 다쳐 숨지게 한 자, 유언을 방해한 자, 속이거나 강제적인 수법을 써서 유언하게 한 자, 유언서를 위조한 자 등은 상속받을 수 없다.

하지만 부양의무를 소홀히 한 부모가 자녀 앞으로 지급돼야 할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도의 규정이 없었다. 특히 부모에 의한 아동학대 유형으로 방임 등 정서적 학대도 문제시 되면서 법 적용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하지만 헌재의 판단은 달랐다. 헌재는 “부모가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았더라도, (이는) 자녀에 대한 살인이나 살인미수, 또는 상해치사 등과 같은 수준의 중대한 범법행위나 유언의 자유를 침해하는 부정행위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가족생활 형태나 경제적 여건 등에 따라 부양의무를 이행하는 방법이나 정도가 다양하므로 ‘부양의무 이행’ 개념은 상대적”이라며 “이를 상속결격 사유로 본다면 명확히 판단하기 어려워 어느 경우에 결격인지를 둘러싼 법적 분쟁이 빈번하게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앞서 A씨는 홀로 키운 딸(당시 30세)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뒤 지급된 보험금 2억3000만원 중 7500만원을 이혼 후 따로 산 전 남편이 상속받게 되자 법원과 헌재에 각각 상속금 반환소송과 헌법소원을 냈다.

A씨는 전 남편이 1985년 이혼한 이후 따로 살면서 양육비 지급은 물론, 딸에 대한 부양의무를 전혀 하지 않았다며 상속 결격 사유에 해당하는데도 이를 규정하지 않은 민법이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박광수 기자 park.kwa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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