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특위·재 신임·지자제…"산너머 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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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국 전망>
4당 체제의 전도에 대한 견해는 극단적으로 갈려 있다. 민주화의 새로운 계기로 받아들이려는 낙관론에 못지 않게 자칫하면 정국 불안이 조성되고 그것을 기화로 그동안의 정치발전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드는 사태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우려도 짙게 깔려 있다.
실제로 4당 자신들도 자기들의 확실한 위상을 정립할 수 있을 만큼 앞날의 정국을 정확히 분석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모두 사태변화의 여러 가지 만삭들을 상정해 놓고 저울질하느라 고심하고 있는 단계다.
여소 야대의 상황이 빚어지면서 한동안 오락가락하던 정부·여당, 그리고 야당 측은 체제 정비를 끝내고 국회 개원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전개될 4각 체제에 대한 원칙적 대응책은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여당 측은 모든 민주화 요구를 수용한다는 원칙을 정했다. 정권을 뒤집어엎는 정략이 아닌 한 제도의 민주적 개선 요구는 모두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없는 처지다.
특위도 구성해서 고칠 것은 고치고 조사하자는 것은 모두 조사해보되 다만 평화적 정권교체의 전통이나 민주주의 기본질서와 가치 같은 것을 건드려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야당 측은 그와 같은 제한을 인정할 기색이 별로 없다. 그러한 제한 자체가 정권 안보적인 구실에 불과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를 다음 번 정권교체의 확실한 계기로 삼을 심산들이다.
야당 측은 이미 수증에 넣은 정국운영의 주도권을 행사하기 시작하고 있다.
종전 같으면 청와대의 일방적 결정에 의해 거의 성사되던 여야 영수회담의 방법도 3김씨가 정하겠다고 나셨다.
여아 4당 총무회담이 열리기에 앞서 야권 3당 총무들이 미리 만나 회담내용을 사실상 결정해 버리는 판이다.「다수 야당」의 의사대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이런 식이면 국회에서 광주사태 특위,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의 비리에 대한 특위 등이 구성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 선거부정 특위도, 반민주 악법 개선 특위도 마찬가지다.
정국은 야당 의사대로 움직여 가게 되어 있다.
정부·여당은 지금까지 정국 주도의 버팀목으로 올림픽을 이용해왔다. 여권은 정치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정부가 강구를 독차지해 온 남북문제, 중공 등 공산권과의 수교 노력 등 북방정책을 활용할 속셈이었다. 그러나 야당 측도 다투어 올림픽 문제에 앞장서고, 통일논의 뿐 아니라 남북 협상에도 참여할 것을 요구하고, 대 공산권 외교에서는 직접 나서서 추진하겠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는 형편이다.
올림픽이나 통일문제, 공산권 문제를 정부의 일방적 성과로 넘겨주지 않겠다는 속셈이다. 「올림픽 후 재 신임」을 정치 공세의 계기로 삼을 생각인 야당 측은 정부측이 의도하고 있는 재 신임의 발판을 없애려는 것이다.
여권이 정치적으로 몰릴 수밖에 없는 혼미한 상황이 확대되면 몇 차례 위기의 고비가 닥칠 것이라는 예상들이 있다.
첫번째 고비는 대충 올림픽 직후에 올 것으로 보고 있다.
파상적으로 진행되던 광주사태, 제5공화국 비리에 대한 국회특위의 조사가 그때 좀 절정에 이르고 전 전 대통령 일가, 군부에 대한 직접적인 조사가 진행된다면 여권 내부에 엄청난 긴장상태가 조성되고 그것이 정국을 파열시킬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전 전대통령 일가의 처신 등에 따라 폭발적인 소용돌이가 일어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재 신임투표는 또 한가지 중요한 고비다.
여권으로서는 이것을 외치의 성과에 대한 신임 형식으로 때우거나 그냥 넘어갈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할 생각도 없진 않지만 그 과정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또 평가의 결과가 정부측에 불리한 것으로 나타날 경우 그 대응방법도 여간 까다롭지 않다.
내년 상반기에 실시될 지방자치제 선거도 정부·여당에는 만만찮은 도전이다.
만약 지난 총선처럼 거의 모든 대도시에서 다시 패배하면 정권유지에 결정적 타격을 받게될 것이다.
아마도 가장 커다란 문제는 여권 내에 이런 도전에 대응할 구심세력이 없다는 점일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 정권은 임기 5년의 단임이다. 지금의 민정당 등 여권은 노 대통령 중심체제로 짜여져 가고 있다. 때문에 앞으로의 야당 도전을 감당해낼 후계 세력은 결집되어 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군 출신과 영남출신이 주류를 이루고 있을 뿐이다.
일부에서는 여권이 흐트러지고 야권이 3분된 지극히 불확실한 상황을 극단적인 일 분법으로 진단하려는 경향을 보이고있다.
즉 여야 어느 쪽도 정국 전체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고 사회적 욕구가 일시에 분출해 혼란스런 상태가 빚어지면 급진좌파의 반체제적 세력이 부상하게 되고 일부 야당세력이 이에 편승하게 되며 반사적으로 극단적인 우파 보수세력이 움직일 기회를 갖게 된다는 논리다. 최근 무성해지고 있는 통일논의 등을 그런 불안한 시각에서 보는 측도 없지 않다. 그렇게 될 경우 과거와 비슷한 장외 세력들간의 갈등이란 위기상황이 조성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장기적으로 대처해 나가려는 미묘한 정치적 흐름도 없지 않다.
지난 총선 때 나타난 치열한 지역 감정에 대응하는「지역연합」의 발상도 있다. 평민당이 제1야당으로 부상했지만 호남세의 일방적 지지를 근거로 했고 민주·공화당도 각각 지역세를 발판으로 삼고 있었던 사실을 바탕으로 해 비호남권 또는 영남권간의 연계를 모색한다는 식이다. 거꾸로 호남·영남간 지역대결의 어부지리를 취해 중부권의 통합을 노리는 계산도 있는 듯하다.
이런 지역 감정적 구분이 정치상황을 더 악화시킨다고 보는 쪽에서는 점진적인 보혁 대결로 몰아가야 한다고 보기도 한다.
이미 운동권 일부가 평민당 등 야당 속으로 편입되어 정치권내에 진출했고 이들이 앞으로 상당히 뚜렷한 이념적 성향을 나타낼 것으로 보이고 있다.
이런 급진적인 경향에 대응하는 온건파 또는 보수적 세력들이 그야말로 보수연합을 이뤄나가야 한다는 견해가 상당히 설득력 있게 전개되기도 한다.
4개 정당파 그 주변의 장외세력들은 4년 후의 총선, 5년 후의 대통령 선거를 앞에 놓고 어떤 방식으로든 연종과 연형을 거듭하게 될 것이다. 3김씨의 개인적 정치역량에 크게 좌우되는 지금과 같은 4당 체제가 항구적인 체제로 정착되리라고 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4당간에 미묘하고도 복잡한 정치 흥정이 이뤄진다면 그 막후에서는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선같은 문제들도 함께 반심할 것으로 봐야할 것 같다.<김영배 기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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