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삼성화재배세계바둑오픈] 집부족증으로 고통받는 이창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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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제10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결승 3국 하이라이트>
○ .이창호 9단(한국) ● . 뤄시허 9단(중국)

게임이 잘 풀리는 날이 있다. 이런 날의 첫째 징후는 행마가 가볍다는 것. 기분 좋을 정도의 긴장감과 부드러운 마음의 밸런스가 발걸음을 산뜻하게 만든다. 게임이 안 풀리는 날이 있다. 이런 날의 징후는 행마가 무겁다는 것. 마음의 밸런스가 무너져 너무 강한 수나 너무 약한 수를 두게 된다. 프로들은 말한다. "다음 수가 쉽게 떠오르면 바둑이 잘 풀리고 있다는 증거지요."

장면도(61~72)=뤄시허(羅洗河) 9단이 61로 나온다. 62로 이을 것인가, 버릴 것인가를 묻고 있다. 네 귀의 실리를 차지하고 좌변 백의 세력권에서 살아버린 지금 뤄시허의 마음은 사뭇 편안하다. 버리면 잡을 것이고 살리면 그 다음 더 좋은 수를 준비해 두고 있다.

이창호 9단은 62로 잇는다. 갈등은 있었지만 너무 커서 도저히 버릴 수 없었다. 그때 63이 붕 하고 허공을 날아오른다. 좋은 수. 아껴두었던 축머리를 적시에 이용하고 있다.

참고도=백 1로 분단하고 싶지만 흑 2로 기어나오면 백은 A와 B, 두 곳을 동시에 막을 수 없어 곤란에 빠진다. 이창호 9단도 1분여 고민하다가 결국 64로 따내지 않을 수 없었고 이때를 기다려 흑은 67로 멋지게 연결했다. 이것으로 흑은 상변 백진마저 삭감하는 데 성공했다. 사귀생의 흑에 비할 때 백은 정말 집이 없다.

흑의 흐름은 바야흐로 순풍에 돛을 달았다. 초반 작전에 실패한 이창호 9단은 집부족증 때문에 전도가 팍팍하다. 고심 끝에 68로 갈라치자 뤄시허는 노타임으로 69, 71. 다음 수가 이처럼 쉽다는 것 자체가 흑의 호조를 말해 준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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