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의 사랑을 영상에 담은 전광혁·김건·주철·신영옥씨.(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물론 실제 전화통화는 아니다. 아직은 남북의 일반인이 서로 자유롭게 통화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영옥양은 북에 두고 온 친구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11분30초 분량의 짧은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탈북 청소년들의 대안학교인 '셋넷학교' 학생들이 영옥양과 함께 제작에 참여했다. '영옥이의 부재 중 통화'라는 제목의 이 다큐멘터리는 27일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의 TV팟과 휴대전화 SKT.KTF를 통해 일반에 공개된다.
셋넷학교 학생들이 다큐멘터리를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말에는 탈북 과정의 고난을 담은 '기나긴 여정'으로 청소년위원장상을 받았다. '영옥이의…'는 학생들의 두 번째 작품이다.
영옥양은 "처음엔 호기심 반으로 시작했는데 진짜 만들 줄은 몰랐다. 북한 사람도 남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서로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수줍어했다. 영옥양의 실제 남자친구로 다큐멘터리에도 출연한 전광혁(22)씨는 "사실 북한에 있다는 남철이에게 조금 질투도 났다. 그러나 어차피 인연이 그렇게 된 것이니까 영옥이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촬영을 맡은 주철(23)씨는 "일반 디지털캠코더를 들고 공부하는 틈틈이 찍었다. 전체 촬영 분량은 60분짜리 테이프 10개 정도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말로 하면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영상으로 보여주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 마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다큐멘터리 제작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으로 셋넷학교에서 영상수업을 담당하는 김건(31)씨의 힘이 컸다. 이번 작품에서 연출과 편집을 맡은 그는 "셋넷학교를 대상으로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학생들과 친해지려고 영상수업을 시작한 것이 여기까지 오게 됐다. 영옥과 광혁은 학교 안에서도 소문난 커플"이라고 소개했다.
학생들이 다큐멘터리 주제로 남과 북으로 헤어진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를 선택한 것은 영화 '국경의 남쪽'(5월 중순 개봉 예정)을 제작하는 영화사 싸이더스FNH의 권유 때문이다. '국경의…'은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탈북해 남쪽에 정착했다가 그 사랑을 잊지 못해 북으로 돌아가려고 애쓰는 탈북자의 삶을 다뤘다. 싸이더스는 '영옥이의…' 외에도 '김선호가 태어나기까지''아리랑 소나타''남한서 사랑을 꿈꾸는 삼순이'등 세 편의 다큐멘터리를 기획 또는 제작했다.
영옥양은 "탈북자 중에는 '국경의…'의 주인공처럼 북한에 두고 온 사랑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다. 드물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까지 가서 사랑하는 사람을 데려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남한에는 금방 끓었다 식는 '인스턴트 사랑'이 많지만 북한 사람들은 한번 사랑하면 영원히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소개했다.
영옥양도 남철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중이다. "이제 곧 고향(함경북도 회령) 앞산에는 진달래가 피겠죠. 진달래를 보면 예전에 아빠 등에 올라타고 '남철이한테 시집갈래'라고 말했던 생각이 나요. 저만 아는 보물 같은 추억을 나눠드리니 소중히 봐주세요."
글=주정완 기자 <jwjoo@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