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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평가 '국제적 잣대'가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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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서울대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의 '대학 종합평가'를 거부할 것이란 소식이 언론을 통해 조심스럽게 전해지고 있다. 5년 주기로 실시되는 국내 4년제 대학들에 대한 2주기 종합평가가 올해로 끝나는 시점에 서울대가 향후 '한국고등교육평가원(가칭)'이 설립되고 나면 그때 가서 평가받겠다며 대교협 평가를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 최상위권 대학들의 입장에서 보면 대교협 평가는 받아들이기엔 달갑지 않고 내뱉기엔 불편한 것이다. 죽기 살기로 평가 준비에 매달리는 중하위권 대학들과 경쟁해 얻을 게 없기 때문이다. 순위가 추락하면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다. 결과가 잘 나오더라도 최우수 판정을 받은 일부 중하위권 대학과 동등한 분류가 될 테니 국내 일류대학 입장에서는 '잘해야 본전'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서울대가 2004년 기계공학분야 평가에서 15등을 한 게 여기에 해당한다. 서울대가 자만(?)에 빠져 대교협 평가 준비를 소홀히 한 때문일 수도 있고 대교협 평가보다 더 중요한 과제에 몰두한 결과일 수도 있다.

문제는 서울대가 평가를 거부하고 있는 마당에 연세대와 고려대라고 고분고분 평가를 받을 것이란 보장이 없다.

상황이 이쯤 되면 이제 국내 대학 평가도 획기적 변화가 요구된다. 대교협 평가를 유지.발전시키려면 무엇보다 평가 결과에 따른 인센티브가 확실해야 한다. 평가를 위해 적지 않은 예산과 인력을 들이는데도 인센티브가 없다면 무슨 위력을 발휘하겠는가. 이제까지의 대교협 평가 결과는 몇몇 국내 일간신문 한쪽 모서리에 작은 기사로 마무리되곤 했다. 오죽하면 개별 대학들이 자체 예산을 들여 국내 일간신문에 '최우수 대학 선정'이라는 자축 광고를 내겠는가. 그렇다고 일류 대학들이 신문에 광고를 내면 일반 국민은 당연한 결과를 가지고 남세스럽게 무슨 광고까지 하는가라고 비아냥거릴 것이다. 서울대의 평가 거부를 비난만 할 일은 아닌 것이다.

이제 국내 대학 평가제도에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기존의 대교협 평가로는 국내 대학들 간의 상대적 서열은 가늠할 수 있겠지만 특정 대학의 평가 결과가 해외 어느 대학에 버금가는지 그 비교의 준거(準據)가 될 수 없다. 지금 우리 국민이 대학 평가를 통해 알고 싶어하는 관심사는 국내 대학들끼리의 서열이 아니라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이다.

따라서 국내 대학 평가도 그 틀을 달리해 국내와 국제 기준에 준한 평가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대학들이 그 수준과 능력에 맞는 평가를 선택적으로 받게 해야 한다. 우선은 국내 몇몇 선두 대학으로부터 국제적 기준에 의한 평가를 권장하게 된다면 여타 대학들도 이에 도전하게 될 것이고 평가를 통한 대학의 변화와 발전도 상당한 기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대학의 변화와 발전을 자극하는 대학평가의 역할이 축소되지 않기를 바란다.

오성삼 건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