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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 아직 멀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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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팀이 4강에 올랐잖습니까. 대회가 끝난 뒤 축구협회와 정부에서 포상금을 선수 23명에게 1인당 평균 3억원씩 지급했습니다. 등급별로 나눠줬을까요, 차등 지급했을까요?"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열리기 직전 축구협회는 '선수별로 공헌도에 따라 차등 지급한다'는 규정을 발표했다. 그러나 대회가 끝난 뒤 인터넷에서는 격렬한 찬반논쟁이 일었다. "모든 경기에 출전한 선수와 벤치에만 앉아 있던 선수에게 똑같이 주는 건 불공평하다"는 게 차등 지급의 논리였다. "선수가 모두 똘똘 뭉쳤기 때문에 4강에 든 것"이라는 게 균등 지급의 주장이었다. 결국 축구협회와 정부는 균등 지급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집단 성과주의의 좋은 사례"라고 평가했다.

말썽 피하려 "똑같이 분배"

2006년 독일 월드컵 본선 진출이 확정됐을 때 한국과 일본.독일의 포상금 지급 방식을 보자. 한국은 A급 선수 11명에게 6000만원씩, B급 8명에겐 5000만원씩, C급 5명에게 4000만원씩 지급했다. 일본은 선수 1인당 1000만 엔(약 9500만원)씩 줬다. 독일은 출전 게임 수에 따라 게임당 700만원씩 지급했다.

'팀워크로 4강 신화를 만들어냈기 때문에 파이도 똑같이 나눠야 한다'는 주장도, '공헌도에 상관없이 균등 분배하면 누가 열심히 뛰겠느냐'는 주장도 모두 일리가 있다. 공헌도를 측정할 방법을 찾지 못해, 또는 말썽 나는 게 귀찮아 균등 분배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자 B가 고백했다. "연말에 우리 팀에 성과급이 나왔는데, 차등을 두면 승복하지 않을 것 같아 똑같이 나눠주고 말았습니다. 분명히 열심히 일한 직원과 공헌도가 미약한 직원이 있었는데 말이죠."

C가 다른 사례를 들었다. "교수 승진 시 연구실적이 필요한데, 규정 논문 편수만 따지는 대학도 많습니다. 한 정부 산하 연구기관에서는 논문의 쪽수로 연구비를 지급한다고 하더군요. 논문의 질을 측정할 방법도 없고, 평가에 대해 수긍하지도 않기 때문이랍니다. 그게 소위 '객관적 평가'라는 겁니다. 그러나 과연 이게 공평한 것일까요?"

작은 의리 앞세우면 발전 없어

B가 다른 질문을 던졌다. "나는 모 광역시청 감사과 직원입니다. 그런데 같은 직장에 있는 절친한 친구가 건설업자로부터 2000만원의 뇌물을 받은 것을 알게 됐습니다. 친구는 아내의 암 치료비가 필요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엄격한 처벌 ②처벌 후 수술비 지원 ③뇌물은 돌려주도록 조치한 뒤 수술비 지원 ④덮어주기

인간의 정리나 친구의 의리를 저버릴 수 없다는 사람은 ③ 또는 ④를,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은 ① 또는 ②를 택할 것이다.

이번엔 C가 물었다. "행정도시 특별법의 국회 통과, 연립정부 발언 파문, 종합부동산세 도입, 강정구 교수 발언 파문, 뉴라이트와 뉴레프트 등장, 사학법 파문, 황우석씨 줄기세포 논란. 지난 1년간 있었던 굵직한 사건들입니다. 몇 개나 기억하고 있습니까."

한국 사회에서는 거의 매일 극적인 사건이 터져나온다. 주간지나 월간지가 팔리지 않는다고 할 정도다. 세상이 뒤집힐 것 같은 사건도 자고 나면 잊어버린다.

성과 지상주의도 문제지만 무조건적 평균주의는 더 나쁘다. 1차원적 의리가 소중하지만, 부정직해서는 사회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쉽게 흥분했다가 금방 망각해서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할 수 없다. 이 세 가지가 그날의 결론이었다.

김두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