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36%에도 자화자찬 '당당한' 부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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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민 대다수가 당신에 대해 절망감을 표출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백악관에 변화를 줄 필요가 있지 않으냐. 백악관이 귀먹었다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여당에서도 나온다."(백악관 출입기자)

"나는 내 참모진에 만족한다. 우린 놀랄 정도로 안정된 행정부(remarkably stable administration)다. 나라를 위해 유익한 일을 했다고 본다."(조지 W 부시 미 대통령)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전 3주년을 맞아 21일 백악관에서 연 기자회견의 한 장면이다. 그는 국민의 지지를 많이 잃었음에도 사뭇 당당한 모습이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그에 대한 지지율은 집권 이후 가장 낮은 36%로 나왔지만 그는 "지지율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라크 상황을 둘러싼 질문.답변이 이어지던 도중 한 기자가 "의회에선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사퇴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고 하자 부시는 단호히 "노(No)"라고 했다. 그러면서 "종이에 적힌 모든 전쟁계획은 적과 맞닥뜨리기 전까진 좋아 보인다. 그러나 적이 전술을 바꾸면 우리도 바꿔야 한다. 우린 전장에서 그렇게 했다. 럼즈펠드 장관은 일을 잘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악관을 약 45년간 출입한 할머니 기자 헬렌 토머스(80)는 "당신은 왜 전쟁을 원하느냐. 석유 때문은 아니라고 했는데 그럼 이유가 뭐냐"고 따지듯 물었다. 그러자 부시는 "어떤 대통령도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며 "내가 전쟁을 원한다고 생각하는 건 명백한 잘못"이라고 대꾸했다. 이어 9.11 테러, 탈레반, 알카에다, 사담 후세인 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전쟁 책임을 그쪽으로 돌렸다. 그런 다음 "나는 (이라크 사태에 대해) 자신이 있다. 낙관적이다. 우린 승리할 것이다"라고 장담했다.

다른 기자가 다시 이라크전을 언급하며 "당신과 백악관을 신뢰하지 않는 국민이 늘고 있다"고 하자 부시는 "우린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리고 "나의 임무는 내 생각을 국민에게 설명하는 것"이라며 "내가 생각하는 건 테러와의 전쟁에서 이기고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기자들이 던진 질문은 한결같이 신랄했다. 부시 대통령은 그러한 기자들의 추가 질문을 자꾸 차단하면서 자신의 입장만 장황하게 설명했다. '놀랄 만큼 안정된 행정부'의 대통령다운 느긋함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부시 대통령이 국민의 소리를 들어야 할 귀를 막고, 목청만 높여 자신의 주장을 반복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회견이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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