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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 태어나도 못 버린 악습-이상언<사회부 기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박종철 군의 억울한 죽음이 몰고 온 역사 전환의 소용돌이가 아직 진행중인 가운데 또 다시 경찰관 3명이 집단 물 고문을 한 사건이 발생했다.
박군 사건 직후『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고문할 수 있느냐』는 내무장관의 반문이나 경찰관들의「고문 추방 결의대회」는 모두 허울좋은 구호에 불과했다는 것을 경찰 스스로의 손으로 입증한 셈이다.
왜 이럴까.
『사람은 사람을 고문할 수 없으나 경찰관은 사람을 고문할 수 있다』고 아직도 우리 경찰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더구나 구속된 경찰관들은『채권자를 구속시켜 빚을 갚지 않도록 해달라』는 채무자의 부탁으로 청부 수사를 했다고 하니 더 할말이 없다.
또 피의자들을 파출소 3층 숙직실에 가둬놓고 이틀 이상 고문했다니 밀실 수사 근절을 외쳐대던 경찰 간부들의 다짐이 무색하다.
부하 직원들의 선처(?)를 부탁하러 검찰청에 나타난 경찰 간부들의 변명은 더욱 가관이다.
『부하 직원들이 공명심에서 무리하게 수사하다 일어난 불상사입니다』
박종철군 사건·권인숙 양 사건 등 사건이 날 때마다 들어온 판에 박힌 논리.
81년 서울 원효로 윤 노파 피살사건을 수사하던 하영웅 형사가 윤노파의 저금통장을 홈친 사건이 발생했을 때 경찰은 거듭 태어나겠다고 천번 만번 다짐했었다.
86년 부천서 성 고문 사건 때도, 지난해 박군 사건 때도 경찰은 매번『뼈를 깎는 자기 혁신으로 다시 태어나겠다』고 다짐했지만 몇 번을「다시 태어나도」옛 버릇은 여전하다.
그러고도 경찰 내부에선『재수 없이 걸려들었으니 이 다음엔 그저 신문에만 안 나면 된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지나 않은지.
고문하는 경찰관, 국민을 괴롭히는 경찰관을 국민들은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그런 경찰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
정녕 경찰이 민중의 지팡이가 되겠다면 시민의 권리보다 경찰조직·경찰관 개인의 이익을 앞세우는 사고, 일을 당하고도 그때뿐인 이 잘못된 관행을 뿌리째 뽑아 버려야만 한다.
민주화 시대를 맞아 경찰의 환골탈태를 위해 경찰이 어떻게 해야할까. 온 국민의 아이디어라도 공모하고픈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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