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당해도 가만히"…집단 내 성범죄 숨겨진 이유 보니

중앙일보

입력

알려지지 않았던 성폭력 사실들이 봇물 터지듯 수면 위로 등장하고 있다. 검찰과 연극계, 대학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해당 분야에서 상당한 지위와 권력을 지닌 자들에 의한 행위가 뒤늦게 공개됐다는 게 공통점이다.

여성단체연합의 한 회원이 대구지방검찰청 앞에서 흰 장미를 들고 검찰 내 성폭력 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성단체연합의 한 회원이 대구지방검찰청 앞에서 흰 장미를 들고 검찰 내 성폭력 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피해자들이 그동안 자신이 겪은 ‘위계에 의한 성폭력’을 있는 그대로 고백하지 못한 이유는 지난해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직장인 1150명을 대상으로 한 성희롱 관련 연구에서도 잘 드러난다.

성폭력과 성적 언동을 포함한 ‘성희롱’ 피해를 겪은 후 대처한 조치를 묻는 복수응답 질문에 응답자의 54%가 "특별한 조처를 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고 답했다. 31.3%는 "주변 사람과 어떻게 할지 의논했다"고 했다.

"특별한 조처를 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고 답한 사람에게 이유를 물은 결과 45.6%가 "상대와의 관계를 생각해서"라고 답했다. 36.3%는 "대응을 해도 별로 달라질 것 같지 않아서", 30.6%는 "신고하면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 같아서"라고 밝혔다.

성희롱 피해를 겪은 이들 중 대부분이 직장 내 성 문제 전담 기구나 수사 기관에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이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조직 내에서 가해자와의 관계가 나빠질 것을 우려하거나 불이익이 걱정되기 때문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에서 직장인 1150명 중 35%는 "직장에서 성희롱을 해본 적 있다"고 고백했다. 여기에서 성희롱은 성추행과 성폭행 등 성폭력은 물론 외모·몸매에 대한 성적 비유나 평가, 음담패설이나 성적 농담, 회식에서 술을 따르라는 행위 등이 포함된 개념이다.

이런 성희롱은 여성근로자의 비율이 높은 직장일수록 줄어들고, 비정규직 비율이 높아질수록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직종별로는 건설업이 가장 높았고 제조업이 두 번째였다.

송우영 기자 song.woo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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