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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철의 車브랜드 스토리③피아트] 국가 자동차 산업 끌어올린 브랜드

중앙일보

입력

한국시장 진출설이 도는 피아트그룹의 자동차 브랜드 알파로메오의 '8C 콤페티치오네' [중앙DB]

한국시장 진출설이 도는 피아트그룹의 자동차 브랜드 알파로메오의 '8C 콤페티치오네' [중앙DB]

이탈리아 피아트그룹은 다양한 자동차 브랜드를 보유한 자동차그룹이다. 알파로메오(Alfa Romeo)·란치아(Lancia)·아바스(Abarth)·피아트 프로페셔널(Fiat Professional) 등 한국에서는 판매하지 않고 있지만 유럽에서 인기 있는 브랜드를 다수 갖고 있다. 이중 알파로메오는 한국 시장에 진출한다는 풍문도 있다.

창업주 조반니 아넬리 경영철학 #이탈리아 산업 발전에 공헌 #선박·항공엔진 분야 등 #사업 다각화로 사세 키워

피아트그룹은 2014년 크라이슬러그룹 지분 100%를 인수하며 세계 8위 자동차 제조사로 규모를 확장했다. 크라이슬러그룹 산하 자동차 브랜드인 크라이슬러·지프·닷지·램·SRT 등이 이때 피아트그룹에 합류했다. 이를 계기로 피아트그룹은 사명을 피아트 크라이슬러 자동차(FCA·Fiat Chrysler Automobiles)로 변경했다.

1957년 이탈리아 시내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피아트 누오바 친퀘첸토 [사진 FCA]

1957년 이탈리아 시내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피아트 누오바 친퀘첸토 [사진 FCA]

피아트는 조반니 아넬리(1866~1945)가 설립했다. 이탈리아 빌라 페로시의 부유한 상류 가정에서 태어난 조반니 아넬리는 유럽에서 이탈리아의 자동차 공업이 상대적으로 낙후된 모습을 보며 자랐다. 이는 그가 자동차 사업에 뛰어드는자극제가 된다. 그는 1899년 7월 11일 ‘토리노에 공장을 둔 이탈리아 자동차 회사(Societa Anonima Fabbrica Italiana Automobili Torino)’라는 이름의 회사를 설립한다. 긴 이름의 이 자동차 회사는 1917년부터 각 단어의 머리 글자를 따서 피아트(FIAT)로 불리게 된다.

이태리 피아트자동차회장

이태리 피아트자동차회장

조반니 아넬리는 피아트 설립 초기부터 급성장을 이끌었다. 대중을 위한 차량을 제작하겠다는 그의 경영 철학은 이탈리아 산업 발전에 상당한 공헌을 했다.

조반니 아넬리는 1900년 코르소 단테에 최초의 공장을 설립했다. 당시 직원은 총 150명이었다. 이들은 24대의 3 1/2HP 모델을 생산했다.

1904년 비스카레티(Biscaretti)에 의해 파란색 배경의 타원형 피아트 로고가 탄생했다. 피아트 최초의 엠블럼이다. 1908년 미국에 피아트 오토모빌 코퍼레이션을 설립한 피아트는 상용차·선박엔진·트럭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1922년 조반니는 당시 유럽 최대 규모의 테스트 트랙(시험장)을 갖춘 링고토(Lingotto) 공장의 문을 연다. 레이싱카 시험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피아트500_리스토어

피아트500_리스토어

세계 1차 대전도 조반니 아넬리에게는 사업 기회였다. 군용차·비행기 등 군수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사세를 키웠다. 피아트가 급성장하면서 조반니 아넬리는 26년경 피아트 회장으로 취임한다.

34년 출시한 바릴라(Balilla)와 1936년 선보인 토폴리노(Topolino)는 피아트가 소형차 브랜드로 명성을 떨치는 계기가 된 차량이다. 바릴라는 연비 효율성에 중점을 두고 생산한 모델이다. 토폴리노도 55년 단종 때까지 70만대나 생산된 인기 모델이었다.

하지만 세계 2차 대전이 터지자 상황이 달라졌다. 상용차 수요가 증가하면서 승용차의 생산이 급격히 감소했다. 게다가 45년 12월 조반니 아넬리가 세상을 떠났다.

창업주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손자 조반니 아넬리(동명이인)가 40여 년 동안 피아트를 이끌었다. 그는 48년 전쟁으로 파괴된 공장을 복구해 공장을 재가동했다. 이후 매출은 더 증대했고, 직원수도 늘어나면서 피아트는 성장을 계속했다.
2차 대전 이후 피아트는 연구개발(R&D)에 주력한다. 히팅·통풍 시스템을 대량생산해 최초로 피아트 차량에 접목한 게 대표적 R&D 성과다.

R&D 투자를 지속한 덕분에 피아트는 선박·항공엔진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힐 수 있었다. 51년 이탈리아 최초의 제트 항공기 G80을 만든 곳도 피아트다. 53년에는 첫 피아트 디젤 엔진을 탑재한 1400 모델을 출시했다.
58년 이탈리아는 자동차 산업이 성장하며 경제 호황기에 접어든다. 피아트도 자동차를 넘어서 농기계 분야까지 손을 대고 해외 공장도 설립한다.

55년 레어 마운티드 엔진을 탑재한 첫 대형 유틸리티 차량(피아트600)이 등장했고, 57년 누오바 친퀘첸토(Nuova 500)를 선보였다. 이밖에도 피아트1800·피아트1300·피아트1500 등 신모델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피아트구찌

피아트구찌

손자 조반니 아넬리는 66년 할아버지처럼 회장으로 취임했다. 회장으로서 그가 주력한 건 공장 자동화였다. 하지만 이는 필연적으로 노동조합의 반발과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60년대 노동운동과 70년대 석유파동을 거치며 피아트는 탈출구를 모색한다. 새로운 카드 중 대표적인 것이 상용차 시장 진출과 공장 자동화였다. 78년 피아트는 바디워크 조립에 로보게이트 시스템을 접목하며 혁신적인 공장 자동화 시스템을 선보이기도 한다.

79년 자회사인 피아트·란치아·오토비앙키·아바스·페라와 함께 피아트그룹은 피아트오토(Fiat Auto S.p.A)라는 이름으로 재출범했다. 84년에는 마세라티로부터 알파로메오까지 인수하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자동차 회사로 성장한다.
하지만 지나친 인수합병(M&A)을 추진하던 시기, 경제 상황은 악화한다. 90년대 경기불황이 시작하고 2003년 아넬리 등 주요 경영진이 세상을 떠나면서 피아트는 2004년 부도위기까지 몰렸다.

피아트·크라이슬러를 이끄는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회장.

피아트·크라이슬러를 이끄는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회장.

현재 크라이슬러그룹 회장이자 피아트 최고경영자(CEO)인 세르지오 마르치오네(Sergio Marchionne)가 등장한 건 이 시기다. 그는 강력한 구조조정을 추진하며 회사를 2년 만에 흑자로 탈바꿈했다. 전략적 제휴를 통해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면서, 신진 디자이너들을 영입해 푼토 등 신차를 출시했다. 2007년 현재의 피아트 엠블럼을 최초로 적용한 것도 세르지오 마르치오네다. 2009년 피아트는 미국의 대표적인 자동차 기업 크라이슬러를 인수했다. 118년 역사를 자랑하는 피아트가 세계 8위 자동차 기업으로 올라서게 된 계기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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