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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치면 엄청난 힘 서로 확인 일본팀 체계적인 지원 부러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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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박찬호가 선수단 숙소였던 샌디에이고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행복했던 한 달'을 이야기하고 있다. 샌디에이고=성백유 기자

서른셋. 잔치는 끝났을까. 아니었다. 새로운 시작이었다. 서른세 살 박찬호(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게 찾아온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은 야구의 의미와 조국의 의미, 나아가 인생의 의미를 되새겨 준 '달콤한 꿈'이었다. 그는 WBC를 통해 한국 야구의 엄청난 잠재력과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한 달간 정들었던 선후배들을 한국으로 떠나보낸 20일(한국시간) 박찬호와 따로 만나 차분히 WBC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제 한국 야구가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한국 야구의 비전은 어떤 걸까요.

"뭉치면 그 힘이 엄청나다는 걸 서로 확인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메이저리그에서 20승을 올린 것보다, 메이저리그 최고 투수에게 주는 '사이영상'을 탄 것보다 큰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야구는 국제무대에서 '베스트 4'에 들었습니다. 자부심을 가져도 좋은 거죠."

-한국 야구가 '월드 베스트 4'에 미치지 못하는 부분은 어떤 게 있다고 봅니까.

"어제 일본팀 라커룸에 가봤습니다. 정리된 분위기 하며 스태프의 지원이 한국보다 훨씬 체계적이었습니다. 선수들이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거죠. 한국은 국제 전문가가 부족한 것 같고, 선수들은 훌륭한 기량과 매너에 비해 지식이 좀 부족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국 야구도 선수협의회가 있으니까 그 차원에서 다양한 재교육이 필요합니다. 미식축구 스타 하인스 워드를 만나보니 그는 운동만 잘하는 게 아니라 교양도 풍부하고, 품성도 아주 본받을 만했습니다. 배울 건 배우고, 고칠 건 고쳐야 합니다."

-겨울에 한국에 왔을 때 이번 대회를 통해 2002년 축구 월드컵 때 같은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고 했는데 이렇게까지 분위기가 달아오를 거라고 생각했나요.

"꼭 그렇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매우 간절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미국에서 한국의 소식을 전해들으면서 야구 선수로서, 야구를 통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뭔가를 많이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대회를 통해 그 바람을 실현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다행히 미국과 일본에서 뛰는 선수들이 모두 합류했고, 김인식 감독님을 비롯한 모든 선배.동료.후배들이 하나가 됐기에 그 소망이 이뤄졌습니다. 너무 감사하고, 기쁩니다."

-일본을 이겼다면 결승전에서 홈팬(박찬호가 속한 파드리스 홈구장에서 결승전이 열린다) 앞에서 던지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요.

"저도 그 생각을 했고,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멋있는 장면일 거라고 상상도 많이 했습니다. 이런 기회가 제 야구인생에서 언제 또 오겠습니까. 그런데 결과는 아쉽게 됐습니다. 비가 내려 경기가 중단됐을 때 클럽하우스에서 '지더라도 무기력하게 지지는 말자'고 힘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만족합니다."

(이때, 이승엽이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박찬호의 호텔방에 들렀다.)

-두 선수 모두 이번 대회에서 활약이 대단했는데, 아쉬운 점은 없었나요.

이승엽="구장 시설이 너무 부럽죠. 특히 그라운드. 애너하임도 좋던데 샌디에이고는 더 좋더군요. 글러브만 대고 있으면 공이 알아서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어요."

박찬호="대회 기간 날씨가 추웠는데 얇은 재킷 하나로 버텼습니다. 선수들은 견딜 만했지만 감독님께서 힘드셨던 것 같습니다."

-메이저리거로서 이번 대회를 마친 소감이 남다를 텐데요.

"대부분의 미국인에게 한국은 늘 일본 옆에 있는 나라, 통신이 발달한 나라 정도로만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한국 양옆에 중국과 일본이 있고, 질서와 정신, 모든 면에서 배울 게 많은 나라, 그런 나라로 알리고 싶습니다. 이번 대회가 그 첫 단계가 된 것 같습니다."

샌디에이고=성백유.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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