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은 1974년 대통령긴급조치 제2호에 따라 설치된 비상군법회의에서 수사.기소.재판을 모두 담당했었던 만큼 검찰은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지 않지만 공익기관으로서 진실 규명에 노력하겠습니다."(검찰)
75년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당한 8명에 대한 재심(再審) 첫 재판이 열린 20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311호 법정. 김형태 변호사 등 변호인 3명은 '인혁당 재건위'는 조작이라고 주장하며 10쪽 분량의 의견서를 직접 읽었다. 서울중앙지검은 8명이 기소된 내용을 짤막하게 설명했다.
재판에는 사형당한 8명 중 5명의 배우자가 대신 피고인석에 앉았다. 일반 형사재판과 달리 피고인들이 입장을 밝히는 모두(冒頭)진술과 검찰 측의 피고인 신문 절차도 생략됐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12월 "물.전기 고문 등 가혹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인혁당 사건 재판을 다시 해야 한다"며 유족 측의 재심 청구를 받아들였다. 이후 검찰 측이 항고하지 않아 인혁당 사건이 사법적 판단을 다시 받게 된 것이다.
변호인 측은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인혁당 재건위'는 실체가 없으며, 인혁당 재건위가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의 반독재 학생운동을 배후조종했다는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유정 변호사는 "인혁당 사건의 증거가 없는 만큼 무죄를 확신한다"고 말했다. 재판이 끝난 뒤 고 하재완씨의 부인 이영교(72)씨는 "숨진 남편 대신 피고인 자리에 앉으니까 떨렸다"며 "사법부가 바른 판단을 내려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고 송상진씨의 부인 김진생(78)씨는 "무죄 판결을 받아도 남편이 살아날 수 없지만 간첩 누명은 벗게 될 것"이라고 했다.
변호인 측은 "5~6월께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겠다"며 "과거 사법부의 대표적 오판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하재식 기자
◆ 인혁당 사건=중앙정보부가 74년 "인혁당 재건위원회가 국가전복을 기도했다"며 관련자 24명을 구속한 것. 인혁당 관련자 8명이 이듬해 4월 대법원의 사형 확정판결 후 18시간 만에 사형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