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언론 감시·비판 기능 제한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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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대법원이 그제 언론의 감시와 비판 기능을 쉽게 제한해선 안 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대전 법조비리' 보도로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전.현직 검사들이 MBC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명예훼손의 책임을 일부 인정했던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낸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공직자의 도덕성.청렴성과 업무처리의 정당성 여부는 항상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감시와 비판 기능은 그것이 악의적인 공격이 아닌 한 쉽게 제한돼선 안 된다"고 못박았다.

이번 판결은 언론이 악의가 없다면 공인이나 사회적 관심사에 대해 자유롭게 보도할 수 있다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미국 법원들은 명예훼손 피해자가 공인인 경우 피해자에게 상당한 입증책임까지 묻는 등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미 연방대법원이 1964년 뉴욕 타임스 대(對) 설리번 사건에서 단순한 부주의(negligence)에 대해선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며 피해자 스스로가 언론사 측에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가 있음을 입증토록 했기 때문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우리의 언론 환경은 어떤가. 공직자들이 언론사를 상대로 잇따라 언론중재위에 제소하는가 하면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고 있다. 지난달엔 급기야 노무현 대통령이 4개 일간지를 상대로 각각 5억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내기에 이르렀다.

사정이 이러니 언론의 비판과 감시 기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법원 판결은 언론자유를 위해 시의 적절하고 바람직한 내용이다.

공직사회가 썩지 않기 위해선 끊임없이 감시와 비판을 받아야 한다. 민주사회에서 감시와 비판은 바로 언론의 몫이다. 그런 만큼 언론사를 상대로 한 공직자들의 소송 남발은 자제해야 한다. 언론 역시 공인을 감시.비판하되 어디까지나 사실과 공익에 근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