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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에스토니아의 디지털 혁신에서 배우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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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인구 125만 명의 북유럽 소국 에스토니아에 주목하는 이들이 요즘 많다. 1991년 옛소련에서 독립할 때만 해도 전화기 보유자가 전체 인구의 절반이 안 될 정도로 가난했다. 그런데 독립 후 20여 년간 눈부시게 성장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95년 3044달러에서 2016년 1만7575달러로 5배 이상 뛰었다.

성공의 힘은 정부가 파격적으로 추진한 ‘디지털 혁신’에 있었다. 외국인들도 누구나 100유로만 내면 2~3주 만에 전자영주권을 받고 에스토니아에 방문하지 않고도 현지에 법인을 세울 수 있다. 150여 개국 출신의 3만 명 이상이 전자영주권을 받았다. 모든 행정업무는 온라인으로 처리된다. 각종 세금도 과감하게 낮췄다.

쾌도난마(快刀亂麻)식의 규제 혁파에 글로벌 벤처자금이 몰려들었다. 수도 탈린에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버금가는 ‘탈린밸리’가 조성돼 전 세계 스타트업들로 붐빈다. 세계 최대 인터넷전화 기업인 스카이프, 세계 최대 개인 간(P2P) 국제송금업체인 트랜스퍼와이즈 등 기업 가치가 10억 달러를 넘는 유니콘 기업이 여럿 탄생했다. 케르스티 칼률라이드 에스토니아 대통령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디지털에 맞는 법 체계 구축 ▶규제의 최소화 ▶정부와 민간의 밀착 협력 ▶국가 차원의 디지털 교육 등을 디지털 혁신의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물론 소국 에스토니아의 경험을 세계 10위권 경제이자 제조 강국인 한국에 모두 적용하긴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규제를 파격적으로 없애 스타트업을 키우고 유치하는 디지털 혁신 전략은 참고할 만하다. 이런 혁신이 가능했던 것은 옛소련에서 독립했던 20여 전, 위기의식과 막막함, 그리고 생존하려는 간절함이 그만큼 강했기 때문일 것이다. 뒤늦게 혁신 성장과 규제 개혁에 뛰어든 우리에게 에스토니아만큼의 위기의식과 간절함이 있는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