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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주식·부동산 추락 … 트럼프가 방아쇠 당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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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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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증시에 대해 입을 열었다. 7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올린 글을 통해서다.

감세로 여윳돈 생긴 기업들 보너스 #물가 자극해 금리 인상 빌미 제공 #국채 수익률 급등 강세장 무너져 #세제 개편으로 주택 관련 공제 축소 #뉴욕 고가 주택 거래 29% 떨어져

“예전에는 좋은 뉴스가 보도되면 주가가 올라갔다. 요즘에는 좋은 뉴스가 보도되면 주가가 떨어진다. 큰 실수다. 우리는 경제에 대해 엄청나게 좋은 뉴스를 매우 많이 갖고 있다.”

그동안 트럼프는 거침없이 오른 주가를 자신의 대표적인 업적으로 자랑했다. 트럼프는 지난해 1월 20일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 후 1년 동안 뉴욕 증시의 다우지수는 6000포인트 넘게 올랐다. 지수 상승률은 30%가 넘는다. 그렇게 믿었던 다우지수가 지난 2일부터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최근 나흘 동안 1293포인트(4.9%)나 떨어졌다. 한달 만에 지수 2만5000선이 무너졌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지난 6일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에 출석해서 투자자 달래기에 나섰다. 그는 “뉴욕 증시에 상당한 변동성이 있기는 하지만 시장은 잘 돌아가고 있다”며 “미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은 튼튼하다”고 역설했다. 다우지수는 이날 하루 반짝 상승했다가 다음달 하락세로 돌아섰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므누신 장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경제성장률을 비롯해 미국의 각종 경제 지표는 좋은 편이다. 지난해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2.3%를 기록했다. 2016년(1.5%)보다 성장 속도를 키웠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미국 경제가 2.7%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경제가 성장하면 주가도 오르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다. 그런데 최근 뉴욕 증시는 거꾸로다. 경제는 좋은데, 주가는 떨어지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해가 안 된다는 입장이다. 투자자들이 ‘큰 실수’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월가의 시각은 다르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을 문제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7일자 사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주식시장이 내려올 줄 모르고 올라가는 줄로만 안다”고 지적했다. 부풀어 오르면 언젠가 터질 수밖에 없는데 트럼프가 그런 점을 외면한다는 것이다.

이번 롤러코스터 증시는 지난해 말 의회를 통과한 세제 개편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낮추는 세제 개편안을 밀어붙였다. 그는 지난달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도 참석해 세일즈맨을 자칭하며 “법인세가 줄어든 미국으로 오라”며 홍보에 열을 올렸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감세는 기업과 가계에 긍정적이다. 기업들의 세금 부담이 줄어들고 투자가 늘어나면서 일자리가 많아진다. 임금 인상과 특별 보너스로 근로자들의 주머니도 두둑해진다. 하지만 감세의 타이밍은 좋지 않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돈이 많이 풀린 상태에서 감세로 임금이 오르자 물가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금리 인상의 발목을 잡았던 마지막 퍼즐이 맞춰졌다.

이종우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그동안 주가 상승의 원동력은 풍부한 유동성이었다”며 “전 세계적인 저금리로 돈이 워낙 많이 풀린 상태였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증시의 ‘거품론’을 주장했다. 그는 “주식과 채권에 모두 거품이 끼어있다”며 “시점이 문제일 뿐 거품은 언젠가 터진다”고 말했다.

연초 주가 상승을 즐기던 투자자들은 주식을 정리할 타이밍을 노렸다. 지난달 31일 연방공개시장회의(FOMC) 성명에서도 물가 상승(인플레) 우려가 제기됐다. 지난 2일 발표된 고용 통계에선 임금 상승이 구체적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미국 근로자들의 임금은 1년 전보다 2.9% 올랐다.

증시의 투자자들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지금까지 주가 상승의 버팀목은 ‘낮은 물가→저금리 지속’의 흐름이었다. 앞으로는 ‘높은 물가→금리 인상’의 흐름으로 바뀔 것이란 우려가 확산했다.

물가 상승에 대한 위기의식은 시장 금리의 급등과 ‘공포지수’로 불리는 변동성(VIX)지수의 상승을 불렀다. 미국에서 시장 금리의 기준이 되는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지난달 초 연 2.4%대에서 최근 2.8%대로 올랐다.

미국의 부동산 시장도 불안한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택 관련 세금공제 혜택을 대폭 축소했다. 부동산에 대해선 사실상 증세를 선택한 것이다. 뉴욕주와 뉴저지주와 같이 재산세율이 높은 주에선 100만 달러짜리 집을 갖고 있다면 1년에 3만 달러 정도의 재산세를 내야 한다. 트럼프는 세제 개편을 통해 재산세 공제 한도를 1만 달러로 줄였다. 주택담보대출 이자비용에 대한 세금 공제 대상도 대출 원금 100만 달러에서 75만 달러로 축소했다. 고가 주택이 많고 거래가 비교적 활발했던 뉴욕시에선 부동산 투자 열기가 움츠러들었다. 뉴욕의 부동산 중개업체인 브라운 해리스 스티븐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올 1월까지 부동산 계약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6% 줄었다. 특히 400만 달러 이상 고가 주택은 29% 감소했다.

김형렬 교보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애플 등 미국 주요 기업이 2분기 실적 전망을 낮췄는데 이에 대한 해석이 분명하지 않다”며 “향후 미국 증시의 움직임은 트럼프의 감세 정책에 따른 미국 기업들의 실적 전망에 달렸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제롬 파월 체제의 연방준비제도(Fed)가 적절한 기준금리 조정을 통해 인플레 우려를 걷어낼 수 있느냐도 큰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주정완 기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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