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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나라를 뿌리째 뒤흔드는 여권 인사들의 막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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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항소심 판결에 대해 집권 여당이 사흘째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7일 “사법부 역사상 가장 부끄러운 판결로 기록될 것”이라며 “신판경(判經)유착 아니면 뭔가”라고 말했다. 박범계 최고위원은 “오로지 이 부회장 석방을 위해 짜 맞춘 가짜 판결, 널뛰기 판결, 취향 판결”이라고 했다. 판사 출신인 추 대표와 박 최고위원이 법원과 법관 개인에 대한 마구잡이 공세에 앞장서는 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나라 운영을 책임진 집권당 지도부가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사법부의 판결을 난도질하는 것은 헌법의 척추인 삼권분립과 법치주의를 뿌리째 흔드는 망동이다. 한 전직 민주당 의원이 퍼부은 “이건 재판이 아니라 개판”이라는 망언 앞에서는 할 말을 잃을 정도다. 이 모든 막말에 앞으로 있을 대법원의 상고심에 영향을 미쳐 2심 판결을 뒤집으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면 더욱 우려스러운 일이다.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여권 인사들이 미국과 일본에 퍼붓는 험담도 도를 넘고 있다. 국회 부의장을 지낸 이석현 의원은 “펜스 부통령은 잔칫집에 곡(哭)하러 오고, 아베 총리는 남의 떡에 제집 굿하려는 심산”이라고 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씨는 “왜 같잖게 일본 총리가 한·미 훈련 재개 얘기를 하느냐”며 ‘졸개’라는 표현까지 썼다.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에 가장 중요한 동맹과 우방 지도자들에게 여권 지도급 인사들이 ‘북한 대변인’이나 할 막말을 쏟아내는 게 기가 막힐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 문 대통령은 변호사 출신 아닌가. 판결에 불만이 있더라도 사법부의 결정 자체는 존중하고, 정치적 입장이 다르더라도 외빈에게는 예를 갖춰 대하는 상식을 여권 지도부와 지지층에 촉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