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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김여정 방남 … 북·미 대화의 물꼬 트기를 기대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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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유일한 여동생 김여정이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일원으로 9일부터 2박3일간 한국을 찾는 건 의미가 남다르다. 북한의 김씨 일가를 뜻하는 이른바 ‘백두혈통’의 일원이 남측 땅을 밟는 것 자체가 처음이다. 김여정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딸인 이방카에 빗대 ‘김정은 정권의 이방카’라고도 불릴 만큼 북한의 중심 인사다.

한반도 전쟁 막을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북·미 대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혜 모으며 #남남갈등 빠지지 않게 북 심리전 경계해야

김여정의 북한 내 위상을 볼 때 그의 방남은 예삿일이 아니다. 김여정은 김정은 체제에서 초고속 승진하며 지난해 10월 정치국 후보위원에 올랐고 현재는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을 맡고 있다. 지난 5일 평양역을 출발하는 북한 예술단을 환송한 것도 그였다. 무엇보다 1990년대 후반 오빠인 김정은과 함께 스위스에서 유학하며 각별한 남매의 정을 쌓은 데다 현재는 김 위원장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의 방남은 많은 기대를 낳는다.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한반도 정세에 대한 각국의 목소리를 들은 뒤 이를 가감 없이 김정은에게 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 친동생을 파견하는 의도도 주목된다. 북한이 평창올림픽을 남북관계 개선은 물론 미국과의 대화 물꼬를 트는 마지막 기회로 간주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을 낳는 까닭이다.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은 역대 가장 강경하다. 북한의 전략 시설을 제한적으로 정밀 타격하는 ‘코피 전략’이 코앞에 닥쳤다는 이야기가 많다. 이번 올림픽에서 북·미 대화의 전기를 마련하지 못하면 곧바로 한반도에 전운(戰雲)의 그림자가 드리울지 모른다. 북한도 벼랑 끝에 몰릴 공산이 크다.

북한이 오늘로 예정된 건군절 열병식에 외신의 방북 취재를 허가하지 않은 것도 당초 핵 무력 완성의 선전장으로 삼으려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규모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조정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 나름대로 미국의 심기를 거스르려 하지 않는 모습이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바람 앞에 촛불을 지키듯이” 또 “언 손에 입김을 불어가며” 어떻게든 평화의 불씨를 살리려 노심초사해 왔다. 김여정 방남이 북·미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계기가 되도록 최대한 지혜를 짜내야 한다. 미국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두고 보자”는 말로 유연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김정은의 대리인’ 김여정의 남측 방문이 평창올림픽을 진정한 평화 올림픽으로 승화시키는 토대가 되기를 기대한다.

한편 우리 내부적으론 김여정의 방남을 차분하고 담담하게 맞을 필요가 있다. 북한은 이제까지 평창올림픽을 자신의 계산에 따라 최대한 이용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현송월과 김영남 방남 등 한국의 관심을 모을 깜짝 이벤트를 잇따라 발표했다. 김여정 파견도 이런 연장선상에 있다. 이 같은 북한의 행태에 일희일비하며 행여 남남갈등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는 동시에 비핵화란 초심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