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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잉글랜드 수퍼보울 패배-21세기 풋볼 왕조 분열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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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필라델피아는 창단 85년만에 첫 우승했다. 터치다운하고 있는 자크 에리츠. [로이터=연합뉴스]

필라델피아는 창단 85년만에 첫 우승했다. 터치다운하고 있는 자크 에리츠. [로이터=연합뉴스]

필라델피아 이글스가 5일(한국시간)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US뱅크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제52회 미국프로풋볼(NFL) 챔피언 결정전(수퍼보울)에서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를 41-33으로 꺾었다.

 미국 언론은 85년 만에 첫 우승을 차지한 필라델피아의 성공 스토리만큼이나 17년간 왕조로 군림했던 뉴잉글랜드의 미래에도 큰 관심을 보인다. 뉴잉글랜드는 2000년 빌 벨리칙(66) 감독과 쿼터백 톰 브래디(41)가 합류한 뒤 최고의 팀이 됐다. 이후 8차례 수퍼보울에 진출했고 5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최고의 감독과 최고의 쿼터백으로 꼽힌 두 사람 간에 지난해부터 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 ESPN의 보도에 따르면 발단은 브래디의 트레이너이자 비즈니스 파트너인 알렉스 게레로다. 브래디는 지난해 9월 게레로와 함께 『TB12 생활법』이라는 책을 냈다. TB는 톰 브래디의 약자, 12는 그의 등 번호다. 톰 브래디가 어떻게 생활하고, 먹고, 운동하는지에 대한 책이다.

브래디는 게레로에게 아들의 대부를 맡겼고, TB12 스포츠 치료 센터를 프랜차이즈로 만들어 전 세계에 퍼트릴 계획도 세웠다.

톰 브래디와 게레로의 관계에 대해 보도하는 미국 스포츠 뉴스. 일부 미디어는 게레로를 두고 '가짜 약장수'라고 비난했다. [미국 NBC 뉴스 캡처]

톰 브래디와 게레로의 관계에 대해 보도하는 미국 스포츠 뉴스. 일부 미디어는 게레로를 두고 '가짜 약장수'라고 비난했다. [미국 NBC 뉴스 캡처]

 게레로는 과거 식이 보충제가 암을 치료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해 논란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그러나 브래디의 신뢰가 워낙 컸기 때문에 감독의 허락을 받고 팀 내부에 치료소까지 설치했다. 그러다 공식 팀 트레이너들과 갈등이 생겼다. 게레로는 선수들의 부상이 팀 트레이너 때문이라고 했다. 감독은 게레로를 팀에 들여놓은 결정을 후회했다고 ESPN은 전했다.

 선수들에겐 더 큰 스트레스였다. 특히 신인 선수들은 브래디가 미는 클리닉에 갈 것인가, 감독이 좋아하는 팀 닥터에게 치료를 받을 것인가를 고민했다. NFL에서 가장 뛰어난 감독과 등 질 것인가, 가장 뛰어난 쿼터백과 척질 것인가를 고민해야 했다.

 또 하나의 갈등은 벨리칙 감독이 브래디의 후계자로 꼽은 젊은 쿼터백 지미 가로폴로다. 다른 위대한 쿼터백과 달리 브래디는 후배의 멘토 역할을 하지 않았다. 기술을 전수하지 않았다. 가로폴로가 TB12에 치료를 받으러 갔을 때 게레로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는 일화도 ESPN은 소개했다. 브래디가 가로폴로를 라이벌로 여겼다는 의미다.

지미 가로폴로는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로 트레이드된 후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다. [USA투데이=연합뉴스]

지미 가로폴로는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로 트레이드된 후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다. [USA투데이=연합뉴스]

 벨리칙은 냉정한 감독이다. 누구라도 실력이 최고라면 주전 쿼터백으로 기용하겠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역으로 최고가 아니라면 수퍼스타 브래디라도 쓰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빌 벨리칙. [AP=연합뉴스]

빌 벨리칙. [AP=연합뉴스]

벨리칙은 브래디의 나이가 너무 많다고 여겼다. 브래디가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을 때 투입된 가로폴로는 훌륭한 활약을 펼쳤다. 벨리칙은 가로폴로를 장기 계약해 묶어두려 했다. 그러나 구단주는 가로폴로를 트레이드하라고 했다. 브래디의 승리였다.

 벨리칙과 브래디의 능력은 최고다. 또한 승리를 위해서는 무슨 일도 할 수 있는 성격이기도 하다. 그런 성격 때문에 애증의 관계다. 지난 18년간 브래디는 벨리칙의 시스템에 잘 적응했다. 벨리칙은 팀 미팅에서 “동네 고교 쿼터백도 할 수 있는 패스를 실수했다”는 얘기를 하곤 했다. 브래디를 질책하려는 것이라기보다는 누구도 비판의 성역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브래디는 감독의 말을 잘 받아들였다. 그러나 최근 달라졌다. 감독이 들으라는 듯 욕을 하는 모습도 보인다고 한다. 브래디는 "감독이 아무리 잘 해도 나에게는 이 주일의 선수상을 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했다.

톰 브래디는 505야드의 패스를 성공했다. 그러나 경기 후반 역전 기회를 살리지는 못했다. [AP=연합뉴스]

톰 브래디는 505야드의 패스를 성공했다. 그러나 경기 후반 역전 기회를 살리지는 못했다. [AP=연합뉴스]

벨리칙은 스파이게이트, 브래디는 디플레이트게이트의 중심이었다. 스파이게이트는 2007년 뉴잉글랜드가 상대팀의 작전을 불법 녹화해 이용했다는 의혹 사건이다. 디플레이트게이트는 2년 전 플레이오프 4강전에서 톰 브래디가 공격을 유리하게 할 수 있도록 공의 바람을 뺐다는 의혹이다. NFL을 들썩이게 한 큰 사건이다.

뉴잉글랜드의 구단주인 로버트 크라프트는 두 사건을 잘 마무리했다. 따라서 뉴잉글랜드 왕조는 구단주-감독-쿼터백의 합작품이었다. 그 황금의 삼각형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다음 시즌 뉴잉글랜드는 어떻게 될까. 당연히 구단주는 떠나지 않는다. 쿼터백인 브래디도 내년까지 계약이 되어 있다. 후보 쿼터백을 다 내보내버려 대안도 없다.

벨리칙 감독은 “팀워크에 문제는 없다”고 불화설을 부인했다. 그러나 뉴욕 자이언츠 등으로 옮길 가능성이 있다고 미국 미디어는 보도했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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