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양팀 리더 … 이종범·이치로 다른 스타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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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기아)은 한때 '한국의 이치로'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이종범과 이치로(시애틀 매리너스)는 날카로운 타격과 빠른 발, 상대의 빈틈을 파고드는 센스, 그리고 강한 어깨까지 닮았다. 그러나 한국 프로야구를 휘젓던 이종범이 일본에 진출해 4년간 통산 타율 0.261, 홈런 27개, 도루 53개라는 초라한 성적을 거둔 뒤 더 이상 그를 '한국의 이치로'로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이번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이종범과 이치로는 나란히 한국야구와 일본야구의 리더로서 마주쳤다. 이종범은 주장이었고, 이치로는 팀의 정신적인 지주였다. 일본은 공식적인 주장을 뽑지는 않았지만 누구나 이치로를 '캡틴'으로 여겼다. 주장 이종범과 캡틴 이치로. 그들의 야구 스타일은 아직도 닮아 있었지만 팀 리더로서의 스타일은 전혀 달랐다.

이치로는 유난히 애국심과 일본야구의 자존심을 거론했다. 그리고 그 자부심을 지키기 위해 앞장섰다. "상대가 30년 동안 일본야구를 넘볼 수 없게 하겠다"라든가 한국에 지고 난 뒤 "오늘은 가장 굴욕적인 날이다"라는 자극적인 말을 쏟아냈다. 마치 기숙사 사감처럼 후배들을 다그쳤다. 앞에 서서 "나를 따르라"라고 이끄는 모습이었다.

이종범은 '큰형님'스타일로 팀을 이끌었다. 그는 "이겨야 한다. 잘해라"라고 윽박지르지 않고 "잘하기 위해 뭐가 필요하냐"를 묻는 스타일이다. 이종범은 스스럼없이 후배들과 어울렸다. 일본에서 열린 1라운드에서는 일본야구를 경험한 '일본통'답게 후배들을 한국음식점이 많은 아카사카 거리로 데리고 나가 기분전환을 시켜 주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운동장에서는 자신이 먼저 진지하게 훈련에 임했다. 16일 한.일전에서 세이브를 올린 오승환(삼성)은 "하늘 같은 선배들이 먼저 나서서 하는데 후배들이 요령을 피울 수 없었다. 이렇게 가족적인 분위기의 팀은 처음"이라며 이종범이 리드한 '팀 케미스트리'가 한국의 선전에 밑거름이 됐다고 밝혔다.

이치로는 메이저리그 최고봉에 오른 수퍼스타다. 그는 '스타의 카리스마'로 일본을 이끌었다. 선수들은 감히 그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주위에서 서성거렸다.

그러나 이종범은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스스로 선수들에게 다가갔다. 그렇게 '우리'가 됐고 하나가 됐다. 그 리더십의 차이가 한국야구와 일본야구를 명과 암으로 뚜렷하게 갈라놓았다. 이들은 19일 또 한번 맞붙는다.

애너하임=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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