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대통령 회견」유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웃음 띤 얼굴, 펜을 들고 질문 내용을 메모하는 모습, 「나」라는 표현대신 「제가」라는 겸손한 표현 등등 21일의 대통령 기자회견은 지난 20여 년 동안 있었던 회견에 비해 분명히 신선한 맛이 있었다.
전처럼 미리 작성된 질문과 답변을 낭독하는 딱딱하고 어색한 연출냄새도 풍기지 않았고 서서 답변하는 대통령의 모습에서도 변화를 추구한다는 진지한 노력의 일단이 보이기도 했다.
이런 외형상의 변화에 비한다면 거의 2시간 가까이 계속된 회견의 내용을 곰곰 뜯어보면 아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쉽다는 느낌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질문 내용에서 기대했던 구체적인 답변을 접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새마을 관계, 전임자와의 권력 투쟁 설, 권력형비리 등등의 질문에 대한 답변에 구체성이 없었고 「원칙적」인 내용에 머물렀다. 이「원칙적」인 내용들은 이미 여러 차례 언급된 것들이었다.
언론매체 쪽에서도 한번 질문하고 나서 답변 내용이 핵심을 벗어났더라도 다시 「추궁」 하려는 노력 없이 「질문」만으로 끝내 버린 것 등 반성해야할 점이 적지 않다.
또 하나 과거를 벗어나지 못한 것은 언론이 회견내용이 「원칙적」이고 「새것이 없다」 고 지적하면서도 회견내용 전문이나 요지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 점이다. 「새것」이 아니면 「뉴스」가 아니라는 명제는 우리 언론인들이 직업적 체험을 통해 갖고 있는 분명한 원칙이다.
국민이 묻고 싶은 질문이 나오지 않는다면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과거처럼 대통령의 일방적인 정책발표나 선전행사로만 끝날 우려가 있다. 기자회견의 당사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음은 물론이다.
언론과 정부, 특히 대통령과의 관계가 「협력적」이어야 하느냐, 「대립적」이어야 하느냐는 문제는 우리가 오랫동안의 타성에서 단숨에 벗어나기는 어렵겠지만 지난날 지나치게 일방적이고 협력적이었다는 비판이 있었다는 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회견 과정이 진실을 캐는 양이 될 때라야 지금까지 관례처럼 돼왔던 주연과 조연들에 의한 쇼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보통대통령의 새로운 멋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박준영 <외신부차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