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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엄청난 고통 겪은 위대한 사람들” 치켜세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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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9호 10면

10년 만에 탈북자 8명 초대한 백악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 백악관에서 지성호씨 등 탈북자 8명을 초청, 30분 간 만났다. 사진 속엔 지성호씨 외 6명만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나란히 앉은 이가 목발을 짚고 탈북한 지씨다.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 백악관에서 지성호씨 등 탈북자 8명을 초청, 30분 간 만났다. 사진 속엔 지성호씨 외 6명만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나란히 앉은 이가 목발을 짚고 탈북한 지씨다.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인권 공세가 본격화됐다. 2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 오벌 오피스에 탈북자 8명을 초대했다. 그러곤  “엄청한 고통을 겪은 위대한 사람들”이라며 “탈북에는 굉장한 위험을 수반한다”고 치켜 세웠다. 지난달 30일 미 의회에서 열린 국정연설(State of the Union)에 탈북 장애인 지성호씨를 부른 데 이은 북한 인권 공론화 작업이다. 미 대통령이 직접 백악관에 탈북자들을 초청한 건 조지 W 부시 대통령 이후 10년 만이다.

문 대통령에겐 “북 인권 공동 노력을” #지성호씨 등 6명 초청 공개 면담 #중앙SUNDAY 등 초청 별도 회견도

이날 탈북자와 면담 일정도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한 후로 잡았다. 처음부터 정교하게 기획된 행사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탈북자를 포함한 북한 인권 개선의 중요성에 대해 논의하고 함께 노력해 나가자”고 말했다. 북 비핵화가 초점이던 대북 공조 리스트에 북한 인권이 추가된 것이다.

한국으로선 올림픽 대화이후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군사회담 등 남북 대화를 재개하고 비핵화를 의제로 한 북ㆍ미 대화로 연결시키는 숙제에 북한 인권이란 난제를 떠앉게 됐다. 게다가 북한 인권은 비핵화보다 북한의 반발이 심할 수 있고 문재인 정부 입장에서도 남·남 갈등까지 유발할 수 있어 휘발성도 크다.

특히 7명의 탈북자들과는 한국어 통역사까지 대동해 약 25분 간 공개 면담을 했다. 탈북자 한 명, 한 명의 입을 통해 북한 인권을 고발하는 특별회견 형식이었다. 이 공개 면담에는 신원 공개를 꺼린 탈북자 2명은 제외됐다.

백악관은 오후엔 중앙SUNDAY·연합뉴스·조선일보·한겨레 등 한국 언론 4개사를 초청해 탈북자들과 함께 별도 브리핑까지 가졌다. 익명을 요구한 미 정부 고위 관리는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감옥같은 북한에서의 삶에서 탈출한 이들을 만나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관심을 가져달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두 명의 탈북자는 가족들의 안전과 신변 위험을 우려해 카메라앞에 설 수 없어 옆방에 대기해 있다”며 “그들은 공포에 질려있고 문자 그대로 처형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면담엔 북한 노동당 대외보험총국 싱가포르 대표출신인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 연구위원, 북한 청진의대 교수 출신인 현인애 통일연구원 연구위원,『7개의 이름을 가진 소녀』란 책을 펴냈던 탈북 작가 이현서, 대북 정보유입 운동을 벌이는 정광일, 김정일의 부인 성혜림씨의 단짝 친구였던 김영순, 미 공영방송 라디오프리아시아(RFA)의 탈북자 기자 정영씨와 지성호씨가 면담에 참석했다.

먼저 현인애 박사는 “북한에서 대학에서 주체철학을 가리치던 교수였다”며 “남편이 잘못돼 가족들이 모두 정치범수용소를 가게 될 처지가 돼서 2004년 탈북했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엔 생각도 못하다가 갑자기 탈북하게 돼서 참 불안했다.우리가 북한체제에 충성해야 한다고 항상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남편이 잘못됐지만 그때까지 충성심이 남아 있었던 것도 같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매우 힘든 삶을 살았다. 거기에서 벗어난 이후엔 현재 삶을 만족스럽냐”고 묻자 그는 “남쪽으로 오면서 저한테 어떤 새로운 삶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도 못하고 넘어왔는 데 하고 싶은 북한 연구도 실컷 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고 답했다.

정광일 대표는 “북한에서 3년 간 정치범수용소에서 수감됐던 정치범 출신”이라며 “한국에 와서 노체인(No Chain)이란 단체를 만들어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해체와 북한에 정보 유입을 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한국 국회에서 한 연설을 보았고 제일 먼저 북한으로 그 연설을 영상과 함께 번역해 보냈다. 그 연설을 본 북한 주민들도 많은 감동을 받았고 자신을 얻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굉장히 고맙다. (내 연설이) 도움이 됐기를 바란다. 대단하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부인 성혜림의 단짝 친구였던 탈북자 김영순(오른쪽 첫 번째)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백악관 영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부인 성혜림의 단짝 친구였던 탈북자 김영순(오른쪽 첫 번째)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백악관 영상]

김영순씨는 “북한의 정치범으로서 9년간 정치범 수용소에서 지냈고 한국에서 뮤지컬로 제작된 요덕스토리가 제 이야기”라며 “김정일의 부인인 성혜림과 여고시절부터 친구여서 사생활을 알고 있는 게 죄가 돼서 1970년 요덕수용소로 가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혜림은 김정일의 처도 아니며 아들도 낳지 않았다. 유언비어를 위반하면 용서치 않는다’고 해서 2002년 탈북해 중국에서 2년 한국에 입국한 지 14년이 됐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평은 “대단하고 놀라운 이야기”라고 감탄했다.

정영 RFA 기자는 “2000년에 중국으로 탈북해 이후 7년간 한국에서 살았고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방송인 RFA의 초청으로 받아 워싱턴에서 일하면서 행복한 미국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해엔 시민권을 취득했는데 미국 국민이 돼서 매우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와우, 대단하다. 환상적인 일”이라며 “축하한다”고 말했다.

탈북 작가 이현서씨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신의 저서 '7개의 이름을 가진 소녀'를 선물하고 있다.[백악관 방송]

탈북 작가 이현서씨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신의 저서 '7개의 이름을 가진 소녀'를 선물하고 있다.[백악관 방송]

이현서씨는 “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우스꽝스러운 나라 출신”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중국이 돕지 않으면 미국 단독으로 북한에 대해 행동할 것이란 대통령의 말이 나를 울게 만들었다”며 “정확히 내가 오랫동안 당신같은 지도자들에게 듣고 싶었던 말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11월 한국 국회 연설에 참석했는 데 북한 인권문제를 조명해줘 기쁨과 감동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북한을 떠나는 건 다른 나라를 떠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우주를 떠나는 것과 같다”며 “중국에선 19살 결혼을 피해 도망치고 매춘업소를 탈출하기도 하면서 숨어사는 동안 7번 이름을 바꿔야 했다”고 말했다. 그런후 “중국이 탈북자들을 계속해서 고문과 투옥, 소름끼치는 공개처형이 기다리는 북한으로 송환하기 때문인데 대통령께서 중국이 탈북자 송환을 중단하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하며 자신의 책을 전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감동적인 제목의 책”이라고 말했다.

김광진 연구위원은 “나는 싱가포르 북한 은행에서 김정은에 의해 잔인하게 처형된 장성택 전 노동당 행정부장을 위해 일하다가 2003년 탈북했다”며 “미국 워싱턴의 북한인권위원회(HRNK)에서 3년 간 일했고 현재 안보전략연구소에서 북한 안보에 관한 보고서를 쓰고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김 연구위원은 “국정연설에 외국인으로선 유일하게 우리 친구인 지성호씨를 초청해줘 대단히 감사하며 당신의 연설은 북한의 많은 엘리트들에겐 용기를 줬고 일반인들에게도 깊은 감명을 줬다”며 “감사하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말로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라며 “두 명의 다른 탈북자가 카메라 앞에 서지 않으려고 밖에 있는데 그들은 문자 그대로 처형을 두려워한다”며 “나는 그 점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미국이 탈북자를 돕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많은 일을 하고 있다”며 “과거 행정부들이 12년 전, 20년 전 행동을 했었어야 하는데 이제 정말 막다른 길로 왔고, 남은 길이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래서 우린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봐야 한다. (평창)올림픽을 거치는 과정에 올림픽에서 뭔가 좋은 게 나올 수도 있다. 누가 알겠는가”라고도 말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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