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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파일] 21세기 '도시의 사냥꾼'이 노리는 것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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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흰코뿔소 [중앙포토]

아프리카 흰코뿔소 [중앙포토]

지난해 3월 6일 한밤중에 프랑스 파리에서 서쪽으로 80여 ㎞ 떨어진 투아리 동물원에 침입자가 있었다. 침입자는 4살 된 흰코뿔소 ‘뱅스’의 머리에 세 차례 총격을 가해 쓰러뜨렸다. 침입자는 또 기계톱으로 뿔을 잘라낸 뒤 이를 가지고 유유히 사라졌다.

2011년 7월 28일 밤 영국 런던에서 북동쪽으로 100㎞ 떨어진 입스위치의 박물관에 두 명의 도둑이 침입했다. 도둑들은 다른 소장품은 그대로 두고 1907년부터 전시돼온 코뿔소 박제 뿔을 훔쳐갔다. 같은 해 2월에도 영국 에식스의 경매소에 도둑이 들어 경매를 앞둔 검은코뿔소의 머리를 훔쳐갔다.
몇 해 전부터 유럽의 박물관·골동품상점·경매장 등에서는 코뿔소 뿔 도난사건이 잇따르고, 급기야 동물원에까지 침입해 코뿔소 뿔을 잘라가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21세기 도시에 등장한 사냥꾼

밀거래 과정에서 적발된 코뿔소 뿔. 그 뒤로는 코끼리 상아도 쌓여있다. [중앙포토]

밀거래 과정에서 적발된 코뿔소 뿔. 그 뒤로는 코끼리 상아도 쌓여있다. [중앙포토]

21세기 유럽 한복판에서 이처럼 ‘도시의 사냥꾼’이 출몰하는 것은 머나먼 아프리카에서 벌어지고 있는 밀렵의 또 다른 얼굴이기도 하다.
허가를 받지 않고 야생동물을 잡아죽이는 밀렵. 아프리카에서는 뿔과 상아를 얻기 위해 코뿔소와 코끼리를 함부로 잡는 밀렵이 성행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만 2010~2011년 300마리 이상의 코뿔소가 희생됐다. 세계자연기금(WWF)에 따르면 남아공에서는 밀렵으로 2014년 1215마리가 밀렵으로 희생됐고, 2015년에는 1175마리, 2016년에도 1054마리가 희생됐다.

밀렵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코뿔소 뿔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기 때문이다. 아시아지역에서는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밝혀진 적도 없는데 뿔이 암·신경통 치료제로 소문이 났다. 소득이 늘어난 중국·베트남 지역에서는 뿔 1㎏ 가격이 한때 4만5000달러(약 4850만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WWF에서는 매년 9월 22일을 ‘세계 코뿔소의 날’로 정한 것을 비롯해 국제사회에서는 코뿔소를 멸종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보호단체 등에서 이런저런 아이디어도 많이 제기된다. “코뿔소를 마취시킨 뒤 미리 뿔을 제거해버려 밀렵에 희생되는 비극을 막아주자”, “코뿔소 뿔에 진드기 죽이는 살충제를 넣어 코뿔소에겐 유익하지만, 사람은 아예 먹을 엄두를 못 내게 하자” 등등이다. 하지만 모든 야생 코뿔소에 적용하기도 쉽지 않은 궁여지책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코뿔소. 밀렵으로 목숨을 잃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국립공원 관리 당국에서 아예 뿔을 잘라버리는 경우도 있다. [사진 세계자연기금]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코뿔소. 밀렵으로 목숨을 잃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국립공원 관리 당국에서 아예 뿔을 잘라버리는 경우도 있다. [사진 세계자연기금]

1년에 3만 마리씩 희생되는 코끼리

코끼리 희생도 크다. 2010~2012년 아프리카 전역에서 10만 마리의 코끼리가 희생됐다. 연평균 3만3000마리가 밀렵 된 것이다. 2013년 1월에는 케냐 남동부 차보 국립공원에서는 생후 2개월 된 새끼를 포함해 코끼리 일가족 11마리가 한꺼번에 밀렵꾼에게 희생됐다. 발견된 사체에서는 상아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세계 각국은 코끼리 밀렵을 방지하기 위해 압수한 상아를 불태우거나 부숴버린다. 2013년 11월에도 미국 동물보호국은 6톤이나 되는 상아와 상아 조각품, 장신구 등 압수품을 부숴버리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태국 방콕 세관에서 밀수 혐의로 압수한 코끼리 상아. 모두 43점의 상아는 18만 달러 어치가 넘는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태국 방콕 세관에서 밀수 혐의로 압수한 코끼리 상아. 모두 43점의 상아는 18만 달러 어치가 넘는다. [연합뉴스]

밀렵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국제 사회에서는 상아 밀거래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세계 최대 상아 거래 시장으로 '악명'을 떨쳐 온 홍콩에서도 2021년까지 모든 상아 거래를 단계적으로 금지하는 법안이 지난달 의회를 통과했다. 홍콩에서 거래된 상아의 90% 이상이 중국 본토로 넘어간다. 상아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중국에서도 2015년부터 상아 거래가 전면 금지되고 있다.
밀렵은 아니지만 지난 2015년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국민 사자’ 세실을 사냥한 뒤 머리를 자른 미국인 치과의사 월터 파머의 행위에 전 세계가 공분하기도 했다. 이에 2015년 7월 유엔은 ‘야생 동식물의 불법 밀거래 차단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2013년에 촬영된 짐바브웨 '국민 사자' 세실의 모습. [연합뉴스]

2013년에 촬영된 짐바브웨 '국민 사자' 세실의 모습. [연합뉴스]

미국인 치과 의사 월터 파머(왼쪽)와 그가 참혹하게 사살한 짐바브웨의 명물 수사자 세실.[사진제공=페이스북 캡처]

미국인 치과 의사 월터 파머(왼쪽)와 그가 참혹하게 사살한 짐바브웨의 명물 수사자 세실.[사진제공=페이스북 캡처]

밀렵 방지 위해 첨단기술 동원 

코끼리나 코뿔소 밀렵을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동원된다. 무인기(드론)를 활용해 밀렵행위를 감시하는 것은 기본이다. 최근에는 상아의 DNA를 분석하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밀렵을 추적하는 방법이 크게 개선됐다. 평상시 코끼리나 코뿔소 배설물을 채취해 DNA를 분석,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두고, 나중에 단속에서 적발된 상아의 DNA와 데이터베이스를 비교해서, 어디에서 살던 코끼리나 코뿔소의 상아인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어느 지역에서 밀렵이 성행하는지를 확인해 집중적인 예방활동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한편, 아프리카 코뿔소의 밀렵이나 밀거래에는 북한 외교관도 관여돼 있다. 남아공 출신 탐사보도 전문기자인 줄리언 로드마이어는 지난해 9월 미국의소리(VOA)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외교관이 관련됐음을 지적했다. 그는 “지난 30년 동안 아프리카에 파견된 외교관이 코뿔소 뿔과 상아 밀수 범죄와 관련됐던 사례가 모두 29건이었는데, 그중 18건에서 북한 외교관이나 북한 여권을 소지한 사람이 연루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지난 2015년 남아공 정부는 모잠비크에서 코뿔소 뿔을 밀매하다 적발된 자국 주재 북한 대사관의 고위 외교관을 추방한 적도 있다. 모잠비크 경찰에 체포될 당시 북한 고위 외교관과 태권도 사범의 차량에서 코뿔소 뿔 4.5㎏과 미화 10만 달러 상당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주재 북한대사관을 찾아 코뿔소 뿔 밀매 관련 질문을 하는 연구진에게 거칠게 항의하는 북한 대사관 직원의 모습. [사진=The Global Initiative against Transnational Organized Crime]

남아프리카공화국 주재 북한대사관을 찾아 코뿔소 뿔 밀매 관련 질문을 하는 연구진에게 거칠게 항의하는 북한 대사관 직원의 모습. [사진=The Global Initiative against Transnational Organized Crime]

2015년 3월 모잠비크에서 코뿔소 뿔을 밀수하다 적발된 북한 외교관과 북한 태권도 사범의 여권 사본. [사진=The Global Initiative against Transnational Organized Crime]

2015년 3월 모잠비크에서 코뿔소 뿔을 밀수하다 적발된 북한 외교관과 북한 태권도 사범의 여권 사본. [사진=The Global Initiative against Transnational Organized Crime]

2016년 9월 에티오피아 볼레국제공항에서는 북한 남성 1명이 가공된 상아 76조각을 갖고 있다가 적발됐다. 같은 해 10월 같은 공항에서 북한 남성이 상아로 만든 팔찌 200개를 소지했다가 적발됐지만, 짐바브웨 대사관 소속 무역관이라고 신분을 밝히고 풀려났다. 직급이 낮은 북한 외교관들은 수입이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데다 평양에 충성자금을 보내야 하므로 밀렵이나 밀거래에 연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릇된 보신 문화가 낳은 밀렵

국립공원 안팎에서 수거된 밀렵도구들 [사진 국립공원관리공단]

국립공원 안팎에서 수거된 밀렵도구들 [사진 국립공원관리공단]

국내에서도 밀렵은 존재한다. 국내에서는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지방자치단체가 정한 수렵허가구역 안에서 수렵 면허를 가진 사람이 야생동물을 정해진 종류와 정해진 숫자만큼만 공기총으로 사냥할 수 있는 수렵허가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덫이나 올무(올가미), 공기총 등을 이용해 야생동물을 잡는 밀렵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지난 2015년 12월 충북 진천 미호천에서는 멸종위기 I급 야생동물인 수달이 밀렵꾼이 쳐놓은 올무에 걸렸다가 구조되기도 했다. 수달은 골반이 골절됐고, 주변 신경도 손상된 상태였다. 지난해 2월에는 전북 장수에서 한 농민이 수달 한 마리를 공기총으로 쏴 죽였고, 가죽을 벗긴 뒤 불에 구워 먹은 협의로 입건되기도 했다.

복원을 위해 소백산에 방사됐다가 창애(덫)에 걸린 여우 [사진 국립공원관리공단]

복원을 위해 소백산에 방사됐다가 창애(덫)에 걸린 여우 [사진 국립공원관리공단]

그릇된 보신 문화 탓에 뱀이나 개구리를 싹쓸이하는 밀렵 행위도 계속되고 있다. 2013년 1월 한강유역환경청은 경기 양평군 용문산 인근의 한 건강원 업주가 뱀 800여 마리, 무게가 1톤이나 되는 뱀을 보신용으로 판매하려고 보관한 사실을 적발했다. 압류한 뱀 중에는 멸종위기 Ⅱ급으로 지정된 구렁이 10여 마리도 포함돼 있었다.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은 지난해 1월 이후 전국에서 발생한 야생조류 집단 폐사 32건(사체 633마리)을 분석한 결과, 전체의 87.5%인 28건(566마리)에서 살충제 등 농약 성분 14종이 검출됐다고 지난달 30일 밝혔다. 특히 지난해 3월 경남 창원시에서 직박구리 119마리가 한꺼번에 죽은 사례에서는 농약 성분인 포스파미돈이 죽은 직박구리의 위(胃) 내용물과 간(肝)에서 검출됐다. 누군가 고의로 농약을 묻힌 볍씨를 뿌린 것으로 환경과학원은 판단했다.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행위다.
국내 밀렵·밀거래 단속 건수는 2000년 819건에서 2012년 480건, 2016년 226건 등으로 지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국립공원 내에서 수거되는 불법 밀렵 도구 숫자도 2012년 2122점에서 2014년 1508점, 2016년 818점 등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하지만 아직 일부에서 지능화되고 전문화된 밀렵·밀거래가 수렵장 기간을 악용해 나타나고 있다. 지난 2016년 3월 초 수렵허가 지역도 아닌 충북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일대에서 멧돼지 4마리를 포획한 혐의로 9명이 적발됐지만, 이들은 정상적으로 수렵 허가를 받은 지역에서 수렵했다고 주장하고 나서기도 했다.

생태계 파괴하는 인간의 이기심

밀렵꾼이 설치한 올무에 걸린 멧돼지 [사진 국립공원관리공단]

밀렵꾼이 설치한 올무에 걸린 멧돼지 [사진 국립공원관리공단]

밀렵이 끊이지 않는 것은 밀렵 행위로 적발돼도 처벌이 약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대부분 벌금형이나 1년 정도의 징역형을 받는 데 그쳤다.
이에 환경부도 2013년 7월부터는 상습 밀렵범에 대해서는 반드시 징역형(3년 이하)을 부과토록 하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시행하고 있다. 또 밀렵신고 포상금도 최대 500만원으로 높였다. 덫을 수거할 경우에도 건당 3000원의 포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밀렵은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물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행위다. 과거 수렵 채취 시대에는 인간도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냥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수렵 행위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충분히 필요한 식량(단백질)을 구해 섭취할 수 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수렵을 제한하는 것도 불필요한 사냥, 지나친 사냥으로 인해 야생동물이 사라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법적인 규제를 뛰어넘는 수렵, 즉 밀렵은 결국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고 귀한 생명을 사라지게 하는 인간의 이기심일 뿐이다.

지리산자연환경생태보존회장인 우두성씨가 직접 수거한 불법 밀렵도구를 들고 밀렵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지리산자연환경생태보존회장인 우두성씨가 직접 수거한 불법 밀렵도구를 들고 밀렵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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