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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재승 칼럼

CES 2018 기술 최전선에선 무슨 일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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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미래전략대학원장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미래전략대학원장

지난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18’에 참석했다. 1967년 시작된 CES는 원래 가전제품 전시회로 출발했으나 이제는 IT를 중심으로 한 전방위 테크놀로지의 최전선이 됐다. 향후 2~3년 내 세계 전자제품 시장에 등장할 기술들을 미리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화려한 기회다.

CES에선 보이는 대로 믿지 말라 #기업 간, 부서 간 경계 무너진 후 #실제 신제품과 서비스로 이어져 #건설사도 아파트를 분양한 뒤 #계속 관리하는 상품으로 여겨야 #스마트홈이 자리잡을 것이다

올해는 약 20만 명의 참가자가 이곳에서 일주일 동안 기술 트렌드를 살펴보았다. 약 4500개 글로벌 기업이 자신들의 기술을 선보였는데, 이 중 1000개 가까운 회사가 스타트업이었다. 작은 스타트업에서 대기업까지 전 세계 비즈니스 생태계가 잠시나마 이곳으로 고스란히 옮겨온 셈이다.

지난 수십 년간 세계를 이끈 기술들이 이곳에서 처음 선보인 경우가 많아 CES가 덩달아 유명해졌다. 수십년 전 전자손목시계, 홈비디오 게임콘솔, VCR, DVD, 블루레이, 평면TV, HDTV 등을 이곳에서 처음 목격한 참관자들의 흥분이란 짐작건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올해 전시회 키워드는 ‘스마트시티’였지만 정작 스마트시티에 대한 원천기술은 많지 않았다. 도시를 거대한 서비스 플랫폼으로 보고 큰 스케일로 시스템을 디자인하는 회사는 많지 않았다.

대신에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기술은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이었다. 자동차나 집이 하나의 플랫폼이 되어 사용자에게 맞춤형 예측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마트카·스마트홈 기술이 다채롭게 선보였다.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이 지난 1년간 획기적으로 발전한 건 아니지만 다양한 제품에 광범위하게 적용돼 일상적인 기술 요소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경향은 지난 3년간 CES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뚜렷한 특징 중 하나다.

그러다 보니 전시회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로봇들도 보게 됐다. 지능을 갖춘 녀석이 움직이고 심지어 사람이나 물건과 상호작용도 한다면 로봇이라 정의할 수 있는데, 사람처럼 생기지 않더라도 로봇처럼 기능하는 제품이 대거 등장했다. 인공지능으로 무장한 로봇들이 우리 일상을 채워줄 미래가 성큼 다가온 인상이었다.

정재승 칼럼 2/3

정재승 칼럼 2/3

또 하나의 특징은 몇 해 전부터 CES에 모터쇼를 방불케 할 만큼 많은 자동차 회사의 부스들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올해는 자율주행차를 직접 타볼 수 있는 기회를 참가자들에게 제공해 화제가 됐다. 연료전지나 전기차 기술에 대한 혁신은 생각보다 더딘 반면, 자율주행기술은 안정적인 성장기로 접어든 모양새다.

CES에 머물면서 어디를 가든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중국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였다. 이번 전시회는 중국인들의 ‘인공지능 굴기’가 여실히 드러난 행사였다. CES를 주최한 전미소비자기술협회(CTA)에 따르면 4500여 개 참여 기업 중 중국 기업이 1400개에 육박했다. 아직은 디자인이 세련되지 못하고 창의적 응용 측면에서 부족함이 보이지만 중국 정부가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기술을 얼마나 지원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프랑스의 선전도 주목해야 한다. CES에 참여한 스타트업 970여 개 중 270개가 프랑스 회사라 한다. 이는 미국(280개)과 거의 맞먹는 수준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재무장관 시절부터 스타트업 육성을 독려해 생긴 결과라고 한다.

하지만 CES에선 눈에 보이는 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전시품들이 곧 출시될 것처럼 홍보하지만 과거 경험으로 미루어 보면 실제로 출시되는 데까지 3년 이상 필요한 제품이 많다. 혁신적인 기술인 것처럼 광고하지만 겉포장만 바뀌었거나 기존 기술들의 재조합인 경우도 많다.

자동차 회사들이 근사한 인공지능 기술을 선보이지만 대부분 구글 같은 IT 기업들의 인공지능을 탑재한 경우라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이를 기업 간 경계가 무너지고 융합 서비스인 것처럼 포장하지만 제품과 서비스로까지 이어지려면 자동차 회사 내에 IT 부서가 반드시 제대로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지금 전시회에서 잠시 똑똑하게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앞으로 10년간 자동차를 사용할 고객들이 2년 주기로 빠르게 바뀌는 IT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스마트홈도 마찬가지다. 아파트를 한번 지어주면 그뿐, 장기적인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해준 적이 없는 건설사들이 스마트홈을 장기적으로 관리해줄 리 만무하다. 하다 못해 문 앞 인터폰도 몇 년이 지나면 방치되기 일쑤인데 말이다. 아파트도 이제 분양하고 나면 끝이 아니라 계속 관리해주는 제품이라는 건설사의 인식 변화가 스마트 시대에 필요하다. 미래는 생각의 속도를 앞질러 빠른 걸음으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미래전략대학원장